[그 시절 우리는] 저수지⑤ 저수지에는 물귀신이 산다

  • 입력 2023.05.14 18:00
  • 수정 2023.05.15 06:34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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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장화리 마을 뒤편에 있는 소류지(沼溜地) 즉 ‘작은 저수지’는 걸핏하면 바닥을 드러내곤 했지만, 규모가 큰 개심저수지는 여간해서는 마르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삼남(三南) 지역에 가뭄이 극심했던 60년대 말의 어느 해에는 그 크다는 개심저수지도 흙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저수지를 관리하는 수리조합 측에서는 저장된 물을 모두 방류하지는 않고. 가운데 부분에 얼마쯤의 물을 남겨 두었다.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수리조합 사무실에서, 저수지 한가운데의 그 넓지 않은 물웅덩이를 두고 흥미로운 흥정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 그러면,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사람헌티 낙찰이 되겄는디, 시방부터 발표를 하겄습니다. 어디 보자…아, 대전에서 오신 강준태 씨!

낙찰받은 외지인이 만세를 부르며 좋아라 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입찰을 했던 것일까?

“저수지가 전체적으로 말랐어도 한가운데는 시골집 마당 서너 개 정도 넓이로 옴팍하게 물이 고여 있었어요. 수리조합에서 물고기를 살리겠다고 그만큼 물을 남겨 둔 거지요. 물고기들이 모두 그쪽에 몰려 있을 것 아닙니까. 그놈을 외지인들에게 입찰 부쳐 팔아서 수리조합 경비로 써야겠다, 이런 계산을 한 것이지요.”

입찰을 통해서 저수지 바닥의 물고기를 잡을 권리를 얻은 그 사람은, 트럭으로 실어낼 만큼 많은 양의 물고기를 잡으리라 예상하고 덤벼들었는데…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물로 바닥을 훑었지만, 물고기들이 저수지 바닥의 땅을 헤집고 들어가 버렸는지, 건져낸 수량이 예상외로 미미했던 것이다.

저수지의 수문을 닫았을 때도 물을 내보내는 수로 쪽으로 들어가면 물이 조금씩은 새 나오고 있었다. 더러는 자잘한 붕어 새끼들이 파닥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삼삼오오 그 수로 속으로 걸어 들어가곤 했다. 그런데 침침한 그 공간은 어쩐지 좀 음산했다.

-야, 천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무서워!

-깜짝이야, 니 목소리가 더 무섭잖아!

“수로가 꽤 넓은데 그 안에 들어가면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서 무슨 귀신 소리 마냥 소름이 끼쳐요. 물이 새 나오는 지점에 가면 쉐, 하는 소리가 제트기 지나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어쨌든 좀 으슬으슬해요. 엄니 아부지한테서 귀신 얘기는 들었겠다….”

규모가 어지간한 저수지의 경우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익사 사고의 내력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사고가 있고 나면, 뒤이어 등장하는 소문이 바로 저수지에 물귀신이 산다는 것이었다.

개심저수지가 완공되어서 처음으로 물이 가득 차던 해의 5월 단옷날, 뱃놀이하던 마을 사람 하나가 그 저수지에 빠져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내내 육지였던 곳이 물이 차서 바다처럼 되니까 신기하잖아요. 동네 사람들이 배를 타고 노래를 부르고 신나게 놀았는데…그중 한 남자가 술이 과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 하다가 그만 풍덩 빠져 죽어버렸네? 한동안 시체도 못 찾았는데 한 달쯤 뒤에야 떠오르더라고요.”

이후로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험한 저수지에 들여보내지 않기 위해서 그 사건을 빌미로 엄포를 놓기 일쑤였다.

-엄니, 나, 더워 죽겄는디, 저수지에 가서 목욕 좀 하고 올게요.

-큰일 나 이눔아. 너, 저수지에 귀신이 산다는 소문도 못 들었냐?

-에이, 거짓말. 우리 선생님이 세상에 귀신 같은 건 없다고 하셨시유.

-참말이라니께. 짚은 데로 헤엄쳐 가면 물속에서 귀신이 두 발을 이렇게 쑥 잡어댕긴대. 그러니께 너도 저수지 가서 멱 감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어. 알겄제?

하지만 어른들의 그런 속 들여다보이는 엄포에 주눅들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저수지 밑바닥의 패인 구덩이에 빠졌다가 물을 한두 모금 먹고 나오면 마치 귀신이 물속에서 다리를 잡아당긴 것만큼이나 놀라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물귀신을 봤다고 허풍을 떤들, 거짓말한다고 타박할 일은 아니었다. 저수지가 있는 마을의 아이들은 다들 그러면서 커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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