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교역으로 우리 먹거리도, 필리핀 농민의 삶도 바뀌다

두레생협 민중교역 컨퍼런스서 필리핀 네그로스 섬 농민들의 자립 노력 소개

  • 입력 2023.05.14 18:00
  • 수정 2023.05.15 06:37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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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9일 서울 구로구 두레생협 지하 메인홀에서 열린 ‘2023 두레생협 민중교역 컨퍼런스' 참가자들.
지난 9일 서울 구로구 두레생협 지하 메인홀에서 열린 ‘2023 두레생협 민중교역 컨퍼런스' 참가자들.

두레생협연합회(회장 김영향, 두레생협)가 제3세계 농민들과 함께 진행하는 ‘민중교역’이 눈길을 끈다.

두레생협은 2004년부터 필리핀 네그로스 섬에서 생산한 마스코바도(필리핀 전통 방식으로 생산한 설탕)의 구매를 시작하며 네그로스 섬 농민들과의 민중교역을 시작했다. 연이어 네그로스 섬 재래종 바나나인 발랑곤 바나나의 민중교역도 시작돼 오늘에 이른다. 두레생협 조합원이 생협 매장에서 구입하는 마스코바도 1개, 발랑곤 바나나 한 묶음(1.2kg)은 각각 100원, 120원씩 ‘민중교류기금’으로 자동 적립돼, 네그로스 섬 생산자공동체에 지원된다.

기존의 공정무역은 제3세계 농민 생산물의 ‘공정가격’에 대한 과제를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그 과정에서 공정무역으로 거래되는 작물 이외의 농사를 통한 자립기반 마련은 약해지던 문제, 공정무역 작물의 단작으로 인한 지역 농업생태계 파괴 문제 등은 간과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이에 착안해, 두레생협은 민중교역 과정에서 교류 대상 농민들의 ‘작물 다변화’ 및 ‘유기농업 확대’를 통한 자립력 강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9일, 서울 구로구 두레생협 지하 메인홀에선 ‘2023 두레생협 민중교역 컨퍼런스 – 바르크 프로젝트를 통한 민중교역 생산지의 자립과 연대’가 열렸다.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네그로스 섬 농민들을 국내에 초대해 열린 이번 컨퍼런스에선, 두레생협이 네그로스 섬 농민들과 함께한 민중교역 과정 및 그 성과가 공유됐다.

‘외부효과에 대항한 소생산자 공동체의 적응 및 복원력 증진(BARC, 바르크) 프로젝트’는 민중교역 참여 생산자의 역량을 높이면서 기후변화와 무분별한 개발, 외부로부터 오는 정치·사회·경제적 압박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도록 도움을 주는 네그로스 민중교역 생산자공동체 프로그램으로, 두레생협은 2015~2022년에 걸쳐 총 1억100만원의 기금을 네그로스 섬 내 23개 생산지 891가구(중복 가구 포함)에 지원했다. 바르크 프로젝트는 사탕수수를 주 작목으로 삼아온 네그로스 섬 농민들의 작목 다변화 및 유기농법 채택 확대를 통한 농민 자생력 강화에 초점을 두고 추진됐다.

바르크 프로젝트는 네그로스 섬 농민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끼쳤을까. 두레생협의 필리핀 민중교역 파트너로서 이날 컨퍼런스에 참석한 아리엘 기데스 식량주권을위한대안무역재단(ATPF) 대표는 “무엇보다 작물 다변화 측면에서 성과가 컸다. 그동안 네그로스 섬 주민들은 생계의 80~90%를 사탕수수에 의존해 왔으나, 프로젝트 참여 과정에서 작물 다변화로 스스로 식량주권을 확보하게 됐다”고 평가하며 “멀피아 지역에선 (바르크 프로젝트 참여 뒤) 생산자들이 고리대금업으로부터 탈피했으며, 쌀의 출하에서 직접 판매에 이르기까지 생산자들의 역량이 발전했다”고 밝혔다.

일리파 지역 공동체의 경우, 기존의 주 작목인 발랑곤 바나나 외에도 버섯 재배 및 양돈을 통한 생산물 다양화, 수입 다변화 노력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2021년 태풍 오데트로 인한 발랑곤 바나나 생산지 피해, 공동체 버섯 매입을 담보했던 판매처의 약속 위반, 돼지 질병 등의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일리파 농민들은 프로젝트 참여 과정에서 강화시킨 역량을 토대로 향후 자립의 길을 계속 가고자 한다.

기데스 대표와 함께 방한한 디오니시오 산체스 나칼랑 페레즈 농장노동자연합 의장은 프로젝트의 성과로서 “정미소와 양돈, 유기농업 기술 등의 분야에 대한 추가적 기술 경험과 관련 지식을 제공받으면서 공동체의 생계수단이 늘어나게 됐다”고 밝혔다.

산체스 의장이 거주하는 나칼랑 페레즈는 도로가 정비되지 않은 지역이라 쌀을 생산해도 외부에서 도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곳이었다. 별도의 정미소도 없었다. 이에 나칼랑 페레즈의 농민들은 바르크 프로젝트 참여 과정에서 지원받은 돈으로 공동체 정미소를 건립했다. 정미 문제를 해결함에 따라 △고리대금업에서 탈출 △교통비, 정미대금 등 각종 제반비용 절약 △운영수익 발생 및 해당 수익의 공동체 귀속 등의 성과도 있었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한편 두레생협은 이날 컨퍼런스 막바지에 ‘두레생협 민중교역 20주년 준비위원회’ 결성식을 통해, 내년 두레생협 민중교역 시작 20주년을 앞두고 더 많은 조합원들의 민중교역 참여 및 응원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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