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생태학, 소농의 손으로 확장시켜 갈 ‘오래된 미래’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의 화두, 농생태학

  • 입력 2023.05.14 18:00
  • 수정 2023.05.15 06:37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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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10일 충북 충주시 켄싱턴리조트 충주에서 열린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열린 ‘특집 농담진담 : 농업환경을 넘어, 농업생태학을 제안하다' 포럼.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장과 윤금순 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왼쪽부터)이 2부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지난 10일 충북 충주시 켄싱턴리조트 충주에서 열린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열린 ‘특집 농담진담 : 농업환경을 넘어, 농업생태학을 제안하다' 포럼.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장과 윤금순 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왼쪽부터)이 2부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다시 농생태학(농업생태학)을 이야기할 시점이다. 단순히 ‘친환경농법’으로서가 아니라 농민과 생태계의 관계를 회복하는 철학체계로서의 농생태학, 우리 농업과 세계농업의 ‘오래된 미래’다.

윤석열정부가 스마트팜·푸드테크 등 자본의 논리가 개입된 구호들을 미래농업의 대안으로 내미는 가운데, 우리 사회에선 농생태학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기회는 거의 없었다. 마침 지난 10일,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소장 유병덕, 이시도르연구소)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충북 충주시 켄싱턴리조트 충주에서 열린 ‘특집 농담진담 : 농업환경을 넘어, 농업생태학을 제안하다’ 포럼은 우리 농업의 대안으로서 농생태학(이시도르연구소에선 ‘농업생태학’이라 표현)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킬 계기점이었다.

2013년 5월 창립한 이시도르연구소는 우리 농업계에서 ‘과정 중심 친환경인증제’를 화두로 던지는 데 앞장서는 등, 우리 사회 대안농업의 각종 의제 설정 노력을 기울여 온 현장친화적 연구조직이다. 이시도르연구소는 창립 10주년 포럼에서 농생태학이라는 화두를 꺼내 들었다.

포럼 1부에선 미겔 알티에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교수가 ‘세계적 위기에서 농민농업을 되살리기 위한 농업생태학’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기조강연을 열었다. 알티에리 교수는 20세기 이래 산업화된 농업으로 인해 수질오염, 생물다양성 및 토양 손실, 온실가스 배출 등의 온갖 악영향이 발생한 점을 지적하면서 “지구 전체에서 매년 2,600만명이 농약에 중독된다. 농약 사용으로 인해 생물다양성도 훼손되며, (해충을 잡을) 천적 생물까지 덩달아 사라짐에 따라 자연에 의한 생물학적 방제가 소멸된다. 이로 인한 손실은 매년 130조원(달러로 표현했으나 이시도르연구소에서 원화로 환산한 금액)에 달한다”고 밝혔다.

산업화된 농업의 핵심적 농사방식은 단작이다. 생산성을 늘려 상품으로서의 농산물을 더 많이 팔기 위한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이뤄지는 단작은 △병해충 확산 △생물다양성 감소 △농업경관 단순화 △화학비료·농약 의존 심화 같은 악영향을 낳는다. 알티에리 교수는 “환경을 단순하게 만들면 유익한 곤충의 ‘풍요함’과 ‘풍부함’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해충이 더 많아지고 농약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라며 “따라서 경작지를 둘러싼 환경을 생물다양성을 갖춘 경관으로 만들어야 해충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알티에리 교수의 예시를 좀 더 살펴보자. 일부 지역 소농은 커피를 숲속의 농지에서 생산하는데, 이럴 경우 높은 나무에서 떨어진 잎이 땅에 떨어져 토양의 양분이 된다. 따라서 화학비료를 사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또한, 유익한 곤충이 풍부해 커피의 해충을 억제한다. 그러나 이 경작지를 단작화시키면 외부자원(화학비료·농약 등)에 의존하게 되고, 익충이 사라지기에 해충은 농약 사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늘어나게 된다. 해충의 농약에 대한 내성이 점차 강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농민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서로 이익을 누리는 것이 농생태학의 핵심 가치인 셈이다. 알티에리 교수는 농생태학을 실천하는 라틴아메리카 소농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일례로 쿠바의 한 가족은 과거 담배·옥수수만 재배하던 농지를 농생태학적으로 재설계했는데, 농지를 생울타리로 구획화함으로써 작물을 태풍으로부터 보호하고, 식량 및 가축사료와 목재의 생산, 돌려짓기·섞어짓기·혼농임업·경축순환농업 등 다양한 농사방식 시도로 식량 생산량은 늘리고 에너지 외부의존량은 0으로 떨어뜨렸다.

멕시코 오악사카 지방에선 훼손된 농지의 복원에 나선 소농들이 산에 나무를 심어 숲을 살림과 함께 토양보전·집수 기술을 도입했다. 오악사카 지방은 연간 강수량이 300mm에 불과한 건조지역인데, 소농들이 저장한 물은 작은 구획에서 작물을 재배하기에 충분하다. 저장한 물은 아마란스 밭으로 보내지는데, 아마란스는 지역민들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쓰인다.

이처럼 농생태학은 농민의 자립 및 산업화된 농지 치유·복원, 토지 재구성, 외부자원 의존 감소와 자원순환 확대 등에 기여한다는 게 알티에리 교수의 분석이다.

포럼 2부에선 유병덕 이시도르연구소장과 윤금순 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농생태학과 관련해 의견을 나눴다. 윤금순 전 회장은 “현재 국내 현실에서 당장에 많은 농민들이 농생태학 실천에 나서는 것은 어렵고, 한두 명이 실천하기엔 모험적인 일이다. 우선 농생태학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높이는 과정이 선행돼야 하고, 연대와 교류를 통해 ‘농민에게서 농민에게로’ 이어지는 실천이 중요하다. 농사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것부터 바꾸고, 자가채종을 늘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언급했다.

유병덕 소장은 농생태학의 핵심 장치로서 토종씨앗(유 소장은 ‘농민종자’라 표현)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농민종자 확산과 관련해 윤 전 회장이 몸담은 전여농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유 소장은 “씨앗 보전은 스발바르 국제저장고 등지의 과학자들이 할 수도 있지만, 결국 씨앗 보전의 핵심 역할은 현장에서 농민이 할 수 있다”며 “농민이 농민종자 농사에 참여해 자기 손으로 지켜내고 씨앗을 다른 농민들과 교류하는 것, 이것이 농생태학의 핵심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정섭 연구위원은 “농생태학은 단순히 생태친화적 농법을 뜻하는 것이 아닌, 지역사회 내에서 농민과 자연생태계 간 관계를 만드는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지금까지의 정부 농정은 각자의 공간에서 조그맣게 살아가는 동식물을 ‘일부러’ 없애버리거나 없애버리려 했던 농정이었는데,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며 “정부는 환경농업 정책과 관련해 ‘개별 농가에게 돈 주면 열심히 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된다. 지역생태계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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