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친환경학교급식을 통해 형성된 ‘식’과 ‘농’의 관계 강화를 위하여

  • 입력 2023.05.14 18:00
  • 수정 2023.05.15 06:36
  • 기자명 이효희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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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희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소장
이효희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소장

 

벌써 5월이다. 새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고, 바야흐로 감자꽃이 필 무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와 교육청은 작년 가을 친환경감자를 담아둔 대형 포장재(톤백)에서 발견된 농약 성분(피페로닐부톡사이드)의 검출로 위축된 관계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어떠한 공식 입장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보관 용기의 농약 검출로 인해서 창고에 있던 36톤의 감자를 전량 폐기한다고 해서 친환경농사를 짓는 농민의 진정성에 대한 무너진 신뢰가 일시에 회복되지는 않는다. 오염된 감자를 모두 폐기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학부모나 영양(교)사는 농약 검출 포장재로 인한 학교급식 감자의 문제를 여전히 생산자의 책임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2009년 친환경 학교급식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유례없이 광역단위의 급식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해온 경기도 친환경학교급식이 쌓아온 신뢰에 흠집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불길한 생각이 든다. 학부모와 시민들이 거리에서 서명을 받고 학교급식조례를 제정했던 2004년 이후 친환경학교급식을 통해서 형성돼온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관계시장을 위축시킬 만한 시도들이 최근에 몇 가지 더 감지됐다. 가령, 작년 11월에 경기도교육청에서 실시한 ‘학교급식 만족도 및 친환경 등 우수 농산물 지원사업 인식조사’에는 ‘친환경농산물이 일반 농산물보다 식재료비 부담이 커서 정해진 예산 내에서 급식 운영에 제한이 있을 수 있는데 학부모님들은 친환경농산물 학교급식이 유지되기를 희망하는가’를 질문하는 문항이 있었다. 경기도교육청의 설문지는 공공재로서 학교급식의 공익적 가치와 목표를 실현하는데 친환경농산물이 자칫 방해가 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탄소중립 전환 사회를 지향하고 지속가능한 농업과 먹거리 체계를 구축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전 세계가 학교급식을 비롯한 공공급식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역주행하려는 불온한 의도로도 해석된다. 서울시 도농상생 공공급식 중단사태와 더불어 누가 학교급식, 공공급식의 가치를 부인하고 관계시장을 위태롭게 하는가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친환경학교급식은 학교급식 질 향상, 농민소득 증대라는 눈에 보이는 목표 이외에도 탄소발자국을 줄이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서 경제정의, 환경정의, 공정, 건강, 복지 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적 기제다. 온실가스 저감, 생물다양성 증진, 토양의 질 개선, 수질오염 방지 등 다양한 비시장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건 물론이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급식 주체들이 대면할 기회가 줄어 들었지만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배려하고 돌보는 신뢰와 협력의 관계를 확인하고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재개돼야 한다. 그리고 관계시장이 위축되고 위기를 겪을수록 공적영역에서 쌓아온 신뢰관계를 훼손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항해서 공공성을 강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학교급식 담당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먹거리 공공성의 위기를 진단하고, 관계시장의 신뢰회복과 교육급식으로서의 위상을 지켜나가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무엇보다 친환경학교급식을 통한 관계시장의 확대를 위해서 학교급식 거버넌스가 강화가 필요하다. 아울러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친환경유기농업 생산 확대는 지속가능한 먹거리 문화와 소비의 확대가 기본이다. 귀한 재료로 정성껏 준비한 친환경학급의 잔반을 줄이기 위한 연구도 필요하다. 학교급식 공급차량부터 친환경전기차로 전환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계약재배 농가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한 기금도 조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계시장의 위축에 대응해 그동안 부진했던 학교급식 교육을 다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간혹 친환경 텃밭, 텃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학교도 있지만 지나치게 학교급식교육이 부족하다. 친환경학교급식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 겨우내 씨감자를 만들어서 감자꽃이 피기까지 땀 흘리는 농부의 정성이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전해지고, 밥 한 끼의 가치가 사회로 확산되는 과정을 공유하는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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