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간식거리

  • 입력 2009.01.19 08:31
  • 기자명 윤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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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귤 속껍질을 뭘로 벗기는 지 알아?” 어느 날,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호들갑을 떨며 묻는다. “몰라. 어떻게 벗기는데?”

“엄마, 그럼 복숭아 껍질은 뭘로 벗기는지 아세요?” 이구동성, 세 놈들이 또 묻는다.

귤 먹을 때는 노란 겉껍질만 벗기고 나머지는 모두 먹었다. 복숭아도 복숭아 농사짓는 친구에게 얻어먹으면서 털만 씻어내고 껍질째 먹는 것을 즐기는 내가 알 턱이 없다. 그러면서 생각해보니 남아도는 복숭아로 통조림을 만들 때 껍질을 벗기는 것이 손이 많이 가서 그냥 껍질째 통조림 만든 기억이 났다.

생으로 먹을 때는 먹을 만 하던 복숭아 껍질이 익혀놓으니 속과 더 대조가 되면서 거칠고 뻣뻣한 느낌이어서 다시 일일이 벗겨야 먹을 수 있었다. 내가 모른다고 하니 재잘재잘 또 답을 가르쳐 준다.

“복숭아 껍질은 양잿물에 담가서 벗기고, 귤 속껍질은 염산이랑 뭐랑 섞어서 벗긴데요.”

“그래 가지고 케이크 위에 얹어서 과일케이크도 만든 데요.”

“인제 과일케이크 못 먹을 것 같애.”

셋이서 또 재잘재잘이다.

며칠 뒤 이번에는 껌에 대한 방송을 보았나보다.

“엄마, 껌 베이스라는 것으로 껌을 만드는데요, 그 속에 비닐수지라고 우리가 풍선 만드는 본드 같은 것이 들어갔데요. 인제 껌도 사먹지 마요.”

사실 그 전날까지도 껌 사게 오백원만 달라고 나를 졸라서 껌 사먹었다. 이런... 최근에 두부 방송까지 보더니 우리 애들 하는 말,

“통 먹을 것이 없네.”

“그러니까 엄마가 콩 볶아다 놨잖아. 자 한 주먹씩 먹자!”

이때다 하고 얼른 볶은 콩을 들이밀었더니 아작아작 잘도 먹는다.

가끔 우리 아이들은 반찬이 맨날 김치나 장아찌, 나물 같은 풀밖에 없을 때가 많아 투정을 하곤 하였다. 어쩌다 김치찌개이고, 돼지고기 뒷다리 살을 양념하여 볶아주거나 생선이 고기의 대부분이다.

명절때 선물세트로 햄이 들어오거나 참치가 들어오면 그것만으로 밥을 다 먹곤 한다. 그러나 고집쟁이 엄마가 절대 자기 돈으로 햄을 사지 않는 것을 아는지라 일찌감치 포기하고 살던 우리 애들이다. 이런 방송을 보면서 이제는 나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겠지?

작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로 촛불집회에 다니면서,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아이들도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라면을 끊었다.

마을에 구멍가게 하나 없다보니 집에 오면 늘 인사가 “엄마, 뭐 먹을 거 없어?”인 우리 아이들. 내가 챙겨주는 간식은 봄에 쑥범벅 두어 번, 제사지내고 남은 떡, 작년 고구마, 김치전이나 늙은 호박을 채 썰어 부친 노란 전도 인기 있는 주전부리이다.

여름이 되면 옥수수, 감자, 밭에서 막 따온 가지, 오이 같은 것들이고, 잘하면 시내에 가서 사다놓은 빵이 있다. 가을이면 감이나 밤이 있는 데 애들은 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올 가을에는 큰 맘 먹고 속이 파랗고 겉은 밤색인 박콩을 한 되 가지고 가서 뻥튀기하는 기계에 볶아왔다.

단 것을 넣지 않고 볶았더니 고소한 맛이 좋은데 애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꾸준히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했더니 욕심쟁이 큰 딸이 한 그릇 담아서 제 책상위에 챙겨놓았다.

언젠가 여성 농민으로 살면서 보람을 느끼는 점을 물을 때 우리 아이들에게 직접 키운 좋은 것들을 먹일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었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좋은 먹을거리가 가득한 세상을 그려본다.

<윤정원 전남 순천시 서면 압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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