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로컬푸드시스템,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지역 품목별 자급률 조사한 후
생산.소비자 참여 이끌어내야

  • 입력 2008.12.31 10:16
  • 기자명 윤병선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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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을 되돌아보면 먹거리에 대한 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했던 한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연초에는 세계 곳곳에서 곡물가격의 폭등으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배급소 앞에 길게 늘어선 모습이 신문지상에 등장했고,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라는 쓰나미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중국발 멜라민파동이 뉴스화면을 채웠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심화되는 경제위기와 맞물리면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필요성과 이른바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정책어젠다가 가세하면서 지역먹거리체계(로컬푸드시스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앙부처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도 구체적인 방안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결실을 맺으려면 그 방향이 올바로 설정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신토불이(身土不二)식 운동’은 철저하게 지양되어야 한다. 신토불이운동은 단지 국내산 농산물의 이용을 강조하는 개념에 불과했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었는가는 묻지 않고, 단지 “우리 땅에서 난 먹거리가 우리 몸에 좋다”는 식의 감상적인 접근은 그 내용이 가지고 있는 고상한 철학적 의미와는 상관없이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신토불이’를 주창한 농협의 매장에 수입산 농산물이 버젓이 활개를 치는 우스운 꼴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지역먹거리운동이란 순환의 체계를 만들어 가고자 하는 운동이고, 이는 현재의 농식품체계가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이들 소수 대자본의 이윤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먹거리가 농단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운동이며, 녹색혁명형 농업에 의해서 파괴되어 버린 ‘관계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현재의 농업생산은 기본적으로 대규모 단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특화를 통해 지역간 또는 국가간의 먹거리 맞바꾸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 결과 먹거리의 생산은 지역경제의 확대나 지역의 식품필요성과는 점점 더 괴리되었다. 더욱이 대규모 단일경작은 지역의 시장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기에 유통자본의 개입이 없다면 판로의 확보도 어렵게 되었고, 농산물시장이 확대될수록 농의 주체였던 농민의 역할은 더욱 축소되었고, 이런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간극들은 외부자본의 지배하에 편입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외부자본에 빼앗긴 것을 다시 농민의 품으로 다시 되돌리는 것이 지역먹거리 운동이다.

또한, 지역먹거리운동은 녹색혁명에 바탕을 둔 대규모 단작으로 인해 피폐해진 농생태계를 복원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화학비료나 농약의 대량살포, 공장식 축산 등이 가져온 생태적 재앙과 먹거리 불안을 극복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지역먹거리운동의 대상은 안전하게 생산된 먹거리일 수 밖에 없다.

지역먹거리운동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사항이 ‘지역’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가의 문제이다. 대규모 단작 혹은 특화단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농업현실에서 지역의 다양한 먹거리수요를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에 근거한 지역설정은 운동방향의 설정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좀 더 유연한 자세로 ‘사회적 거리’를 축소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량의 먹거리를 필요로 하는 학교급식이나 단체급식에 지역먹거리가 더 많이 사용될 수 있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의 품목별 생산현황을 파악하여 지역먹거리운동의 출발로 삼을 핵심품목을 무엇으로 설정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지역의 다양한 수요에 상응하는 다품목생산을 유도해야 한다. 또한, 농민과 소비자사이의 소통의 확대를 꾀하는 구체적인 작업을 전개함으로써 먹거리의 생산으로부터 철저하게 유리되어 있는 도시민들이 먹거리에 대하여 올바르게 인식하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며, 지역의 생산자, 소비자, 자치단체 등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

개별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산되어 있는 상태에서 동력을 만들어내기 힘들기 때문에 마을별, 품목별로 생산자조직을 묶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지역협의체를 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보다 앞서 세계 각지의 소농과 소비자들이 실천하고 있는 지역먹거리운동은 우리들 고민의 상당부분을 이미 해결해 주고 있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윤 병 선
건국대 사회과학부 교수, 경제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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