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공사 창립 100주년

  • 입력 2008.12.15 09:40
  • 기자명 연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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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촌공사가 지난 8일 농촌공사 대강당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1908년 옥구서부수리조합으로 시작한 농촌공사는 국가 농림예산의 32%를 집행하면서 4천9백만 국민의 주곡 생산을 책임지는 농정의 중추기관으로 성장했다. 다음은 창립 100주년 맞은 한국농촌공사의 역사를 돌아봤다.

한국농촌공사의 역사는 1908년 12월 8일 전라북도 옥구군에 국내 최초의 수리조합인 ‘옥구서부수리조합’이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전국에 걸쳐 크고 작은 규모의 수리조합이 설치돼 다양한 수리사업을 전개하여 낙후했던 국내 농업기반이 어느 정도 근대화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1960년대에 들어 농업발전을 위해 관련제도를 정비하고 수리조합 합병과 식량증산을 위한 개간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되면서 국내 농업은 서서히 발전의 닻을 올렸다. 1970년대에는 농촌근대화를 추진하는 주체로 토지개량조합연합회와 지하수개발공사를 합병하여 농업진흥공사를 설립했으며, 외국 차관을 통한 대단위농업종합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농업기반시설이 확충되고 농업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나라는 주곡인 쌀 자급 달성이라는 쾌거를 이루었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수리사업을 통해 농업기반시설을 획기적으로 확충해 나갔다. 1990년대 들어 UR협상 타결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는데, 이후 공산품과 더불어 농산물의 무역장벽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세계무역질서가 재편되었다.

이러한 개방화 물결 속에서 정부는 우리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농어촌발전종합대책, 42조원 투융자계획, 15조원 농어촌특별세 신설 등 다양한 정책을 수립했으며, 농업진흥공사를 농어촌진흥공사로 개편, 설립했다.
농어촌진흥공사는 설립 이후 영농규모화사업 추진, 생활환경 개선 및 농업생산기반 조성 등 살기 좋은 농어촌 건설을 위해 전사적인 노력을 전개했다.

2000년 1월 1일 그동안 농업생산기반조성 업무를 분산해 담당했던 농지개량조합, 농지개량조합연합회, 농어촌진흥공사 등 3개 기관이 대통합해 ‘농업기반공사’가 출범했다. 그러나 당시 농지개량조합과 노동조합은 이 통합에 강력 반발, 진통을 겼었다.

농업기반공사로 출범한 공사는 농업생산기반조성 등 농업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 안전영농기반이라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WTO와 FTA 등으로 인해 다시 전환점을 맞게 됐다. 농업이 개방되면서 기반공사는 2006년 12월29일 기능을 확대하고 명칭을 한국농촌공사로 변경해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농촌공사는 정책사업과 자체사업의 조화를 통해 농어업과 농어촌의 소득과 권익을 증대하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자립형공사로 거듭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으며 올해 100주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연승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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