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적재 투쟁과 컴퓨터

  • 입력 2008.12.15 08:31
  • 기자명 김훈규 경남 거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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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훈규 경남 거창군 웅양면
마을 진입로 옹벽공사가 거의 마무리다. 참으로 보기좋게 반듯반듯하다. 비만 오면 토사가 흘러내려 매일 새벽 마을이장님의 방송을 듣고 삽질부역을 나가야 했던 지난 여름, 이장님도 면사무소도 부족한 예산 때문에 해결방법이 없어 전전긍긍. 시골동네 젊은 사람의 객기(?)로 군수님께 직접 편지를 섰다. “제발 민원 좀 해결해 주소! 우리동네 인구 다 해봐야 열댓명, 그중 대부분이 70대요, 60대 이하 ‘청년’이 서넛이라, 바쁜 농사철 삽질하다가 볼일 다 보겠소!”

부지런한 우리 군수님 결국 우리 동네까지 친히 방문해서 예산에도 없는 몇천만원짜리 옹벽공사도 지시하시고,  시원시원한 우리 군수님 덕택에, 이 마을로 이사온지 1년밖에 안된 젊은 내가 그냥 동네 인심 한번 제대로 얻게 됐네.

요즘은 참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으로 정보공개 요청만 하면 뚝딱, 군청자유게시판에 올려도 뚝딱, 잘 안되면 지자체장에게 직접 올리는 글도 있고, 그것도 안되는가 싶으면 저 위 청와대까지 민원을 올릴 수 있는 현대식 신문고가 쫙 깔려있으니 얼마나 빠르고 훌륭한 세상인가. 민원인이 그렇게 글을 올리면 ‘공짜로, 공손하게’ 대답을 안하면 안되는 행정적 의무가 있으니괜히 억지로 면사무소고 군청을 찾아가서 떼를 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거창 골짝 곳곳의 농민 2백여명이 나락 3천여가마니를 들고 면사무소고 농협 앞에 쌓아 두었다. “내년에도 쌀농사는 지어야 되겠는데 도저히 생산비도 안나와서 미치겠다”는 이런 민원이 먹히질 않는다. 결국 곳곳에 흩어져있던 나락을 몽땅 군청 앞으로 옮겨 쌓았다. 천막도 쳤다. 민원도 이런 ‘무식한’ 민원이 없다.

예전에 없이 올해는 지역 언론도 관심이 대단하다. 좋은 현상이다. 보도자료만 기대하고 그대로 실기만 하던 일부 언론은 대서특필까지 해준다. 직불금 문제로 농업문제 쌀문제 부각되다 시들하나 싶었는데 쌀 싸움 할 만하다. 농민들 떼쓰면서 나락 쌓아두니 군청에서 팔아주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해마다 이런다고, 군청 나락적재를 업무방해로 고발이라도 해야한다고 지자체를 질책도 한다. 전국에서 어느 지자체가 가장 먼저 고발을 할지 두고 볼 일이다. 우리도 이런 식으로 생고생해서 나락 쌓고 천막노숙하기 싫어 죽겠는데, 제발 올해가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농사지은 만큼 정당한 가격 잘 받도록 내년에는 정부에서, 농협에서 나서주시오.

작년에 비해 농협수매가도 5만원 이상은 된다니 기뻐하란다. 경남도에서 벼경영안정자금 100억을 투입한단다. 큰 액수다. 그리고 큰 성과다. 내년에 벼농사 짓는 농가 통장에 직접 넣어준단다. 계산기 두드려보니 한마지기당 7천원보다 조금 더 주는 것 같다. 계산이 맞나? 70% 오른 농약값에 200% 오른 비료값은 어쩌라고, 농약회사, 농협 배 채우는데 뜯긴 그 돈은 어떡하고, 나랏돈 100억이 우리집 통장에 들어오니 내 고물트럭 기름 한번도 ‘만땅’ 넣을 수가 없네.

정부도 지자체도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른다. 농민들이 ‘무식한’ 방법을 동원해서 넣은 민원이라 ‘무식하게’ 대응하는 것일까?

서울도 가지말고 나락도 쌓지 말고 천날 만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청와대에, 농림부에, 지자체에 민원만 수두룩 한번 넣어볼까 하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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