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국농업의 현주소

  • 입력 2008.12.08 13:24
  • 기자명 이창한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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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한 위원장
지난 11월 18일 법원은 2005년 여의도에서 ‘쌀협상 국회비준저지 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망했던 전용철 열사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해 국가가 유족에게 1억 3000만원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배상판결은 당연한 것이지만 농민들의 마음은 허전하기만 하다. 한국농업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쌀 개방을 거부하고 농민들의 살 권리를 외치다가 희생되었던 것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의 아무런 메아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농민 삶

국제곡물가가 급등하면서 세계적인 식량위기 상황이 발생하고 있고 각 나라마다 자국 농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앞 다투어 추진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말이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 한국농업의 자화상은 초라하다 못해 위기의 상황까지 다다르고 있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가뭄이 들려거든 아예 바싹 말려죽이고 비가 오거든 너나없이 쓸어버려라. 그래야 농민들이 비로소 소중한 줄 알 것 아니냐.”며 상실감과 더불어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내겠는가?

이러한 농민들의 감정에는 정부 책임이 크다. 그동안 정부가 수입개방을 전제로 하는 농업구조조정으로 맹목적인 시장지향 정책을 추진해오면서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상실되어 가고 농민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럴진대 현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농업을 더욱 더 시장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농림부를 농림수산식품부로 개편하여 농업이 1차 산업에서 벗어나 2·3차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으로 농림어업정부조직을 개편하였다. 그러나 정작 1차 산업인 농림어업의 생산성 향상과 농어민들의 소득보장 정책 등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연계정책이 없다.

오히려 농민들은 현 정부가 ‘돈 버는 농림어업, 효율성을 중시하는 농림어업정책’이라는 명분하에 농업구조조정을 전면화 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를 암시해볼 수 있는 내용이 바로 농업을 기업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정부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던 농업의 자본화·기업화를 통해 구조조정되는 다수의 중소규모 경작 농민들이 농업노동자로 전락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농협개혁 문제는 어떠한가? 최근 정부는 농협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농협법’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농민들이 바라는 농협개혁에는 못 미치고 있다. 그 이유는 농협개혁에 대해 현장 농민들이나 농민단체의 의견보다는 농협의 입김에 더 휘둘리기 때문이다. 이번 정대근 전 중앙회장의 세종증권 인수 비리문제에서 의혹이 제기되듯이 농협은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으로 정부와 정치권에 로비를 일삼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정치권의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국회 쌀직불금 국정조사 특위의 쌀직불금 불법수령 문제 처리과정에서 엿볼 수 있듯이 농지투기라는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정치공방을 일삼고 있는 과정에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애꿎은 농민들만 소작농지를 지주에게 빼앗기는 등 피해를 당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의 이러한 모습은 농업농촌의 공공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하기 시작한 다른 나라들의 정부와 정치권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미국은 지난 5월 확정한 ‘2008년 미국 농업법’을 통해 농업부문 전반에 대해 향후 5년 동안 이전의 지원예산보다 370억 달러(37조원) 증가한 3천70억 달러 예산을 들여 직간접적인 보조를 확대하도록 하였다.

또한 일본은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식량안전보장과’를 신설하고 식량자급률목표치를 2015년까지 45∼50%로 상향조정하였다. EU는 ‘유럽농촌개발기금’ 창설로 농업에 대한 투자·지원을 강화하였고, 중국은 미국발 금융위기 극복방안의 하나로 농업·농촌 발전을 통해 9억명 농민들의 소비력을 기반으로 내수를 활성화하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각 나라들의 이 같은 조치는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식량의 안정적 확보라는 전략적 판단에 의해서다.

척박한 땅에도 뿌리는 내린다

한국농업은 지금까지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의해 소위 ‘어쩔 수 없는 희생’을 당해왔다. 그 결과 2008년 한국농업은 희망이라는 단어보다 위기 또는 심각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농민들은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민들레처럼 오늘도 들로, 밭으로, 하우스로, 축사로 발길을 향한다. 굳은 표정 속에는 농민들의 힘으로 한국농업을 지키고 살려보겠다는 결심이 깃들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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