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직불금 파문 ‘유감’

  • 입력 2008.11.01 11:22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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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원 교수
최근 감사원의 차관급 등 고위인사 12명이 일괄사표를 제출했다고 한다. 감사원의 독립성과 쌀 직불금 감사내용을 제때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회적 파문에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쌀 직불제도의 문제점과 부조리를 감사한 것은 지극히 잘한 일이었고, 박수를 받아 마땅한 사안이다.

문제는 그 감사결과의 처리과정에서 감사원이 이 눈치 저 눈치 권력핵심의 눈치를 살피다가 감사원의 치부가 드러난 사실이다. 감사원 내부에서조차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감사원 자체에 문제가 많긴 많은 모양이다. 국정조사에서 뭔가 드러나려는지 모르겠다.

박수 받을 감사원이었는데…

그런데 정작 쌀 직불제도를 뭐가 그리 급한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시행한 농림부(2005년당시)와 국책연구기관 어디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질 않고 있고, 책임지겠다는 소리도 한마디 없어 의아하기 짝이 없다.

쌀직불제도의 도입과정은 물론이요 내용의 허술함으로 수십만명의 엉터리 농민이 직불금을 타갈 수 있도록 해 놓았고, 이것이 이토록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음에도 주무부처에서 누구하나 책임지거나 사과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2005년 전격적으로 해방이후 60여년간 지속되어 오던 쌀 수매제도를 중단하고 쌀 직불제도와 공공비축제를 도입할 때부터 많은 문제점과 우려를 지적하였으나 막무가내였다.

수십년동안 지속되어 왔고 쌀 농가의 소득보장에 크게 기여하여 왔던 쌀 수매제도를 없애고 다른 제도를 도입하려면 최소한 2∼3년 정도는 기초자료를 축적하고 발생 가능한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장치를 마련한 후에 단행하여도 될 일을 무 자르듯 단칼에 아무런 준비 없이 하루아침에 바꾸어 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사태는 정책을 아무런 준비 없이 독선적으로 시행한 결과에 다름 아니다.

설사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수십년만에 새롭게 도입하는 제도라면 조금 더 치밀하고 정교한 검토가 있은 연후에 도입하여도 늦지 않다. 더군다나 개방화에 대비하기 위한 쌀 정책은 수매제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매제도의 폐기가 그렇게 급한 것도 아니었다.

쌀 품질고급화 정책, 쌀 유통정책, 쌀 브랜드화 정책, 쌀 소비촉진정책, 수입쌀 정책 등 시급한 정책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농림부와 정부 출연연구기관은 WTO체제하에서 수매자금이 계속 줄어들고 있고, 수매·방출제도가 농가소득지지 효과가 매우 미미하다는 점과 쌀 가격을 낮추어 가격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논리로 하루아침에 쌀 직불제도와 공공비축제도로 바꾸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쌀 수매제도는 수매자금이 점점 줄어들어 수매물량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으나 수매가격이 일반 시중가격에 영향을 미쳐 직·간접으로 쌀 가격을 지지하는 효과는 매우 컸고 이는 농가소득지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쌀 수매제도의 농가소득지지효과를 직접효과, 즉 수매량에 의한 소득효과만으로 파악하였고 수매량 이외의 쌀 시중가격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애써 외면했다. 그밖에도 쌀 가격을 낮추어 2014년 개방이후 에라도 가격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정책목표를 제시하였으나 그것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넌센스였다.

3∼4년이 지난 지금 쌀 가격경쟁력은 전혀 높아지지 않았다. 최근 조금 나아졌다면 그것은 쌀 직불제도 때문이 아니라 국제곡물가격이 상승하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쌀 직불금이 결국 지주에게 간다는 것도 정확하게 예측하고 지적했었다. 부재지주가 약 50%가 넘는 상황에서 모든 직불금이 실제경작자에게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히려 이를 방관했다. 농민에게 가든 지주에게 가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잘못된 정책 부서는 책임져야

물론 모든 정책이 성공만 할 수야 없다는 것을 모르는바 아니고, 모든 정책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라는 것도 아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연후에 결정된 정책을 시행하다가 문제가 발생한 것까지 문제시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정책의 도입과정에서 강력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발생 가능한 문제점이나 위험을 미리 경고했음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밀어 부친 대표적인 정책의 경우에는 당연히 정책입안자는 물론이요 부처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옳고 당연하다. 정책실명제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야 모든 정책이 투명해 지고 신뢰가 조성된다. 이번 쌀 직불금 파동은 쌀 직불제 도입과정에서의 우려나 문제제기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았고 강행했다. 따라서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사과하라는 얘기다. 이제 농정입안자들은 겸허한 자세로 농업·농촌·농민을 섬기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정책입안과 도입과정에서 비판과 충고를 신중히 귀담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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