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품이 설명과 다릅니다

  • 입력 2023.04.23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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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만원짜리 정액이 KPN950으로 둔갑하는 게 현실, 출생신고도 2~3개월씩 속이는 분들 많다.’

‘감정사는 보면 알 텐데 하도 많으니 넘어간다.’

‘올초 26마리에서 모근 채취했는데 5마리만 친자확인. 따지니 검사기관과 축협은 서로 책임전가하고 있다.’

‘직원들이 무서워서 대의원, 이사들 소 털 뽑을 수 있을까?’

‘우리 축협은 귀표 달 때 아예 꼬리털을 뽑아간다.’

지난해 말, 유명 한우 사육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우 혈통정보 신뢰성 문제를 개선하자는 내용으로 올라온 글에 달린 댓글들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잘못된 이력을 신뢰하고 소를 샀다가 고생하고 있는 농가의 제보를 받은 뒤,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싶어 우선 한우 농가들 사이에 유명하다는 인터넷 커뮤니티들을 뒤져봤다.

인터넷에 익숙하고 개량 정보 교류에 적극적인 농가들은 혈통을 속이거나, 개월령을 속이는 행태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 보였다. 혈통등록 증명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푸념에서부터 이력에 적힌 개월령을 믿지 못해 이제는 체형을 아예 보지 않는다는 경험담, 개체식별번호를 통해 알 수 있는 교배 이력에서 미분만-분만으로 이어지는 이력은 일단 의심하고 봐야한다는 조언까지, 바깥에서 보기에는 온통 신기한 이야기들뿐이다.

그렇다고 하니, 이제 알만한 농가들에게 연락해 우시장이 정말 그런지 묻기도 많이 물었다. 한 농가는 전화를 받은 뒤 최근 방문한 우시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농가들보다야 한참 모를 내가 봐도 아마 1년 정도는 자라지 않았을까 싶었던 사진 속 소는 7개월령에 가까운 송아지라는 이력을 버젓이 달고 있었다. 단지, 담배갑 길이보다도 짧은 뿔만 어린 송아지의 그것에 걸맞았다. 뿔을 일부러 자르고 갈아내 ‘눈속임’한 것. 아는 농가들은 알아보지만 모르는 농가들은 또 모른다. 특히 정보 습득능력이 취약한 고령농가나, 귀농민들이 많이 당한다고 한다. 해당 제보자는 ‘이래서야 농촌에 더더욱 사람이 오겠나’라고 한탄했다.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시장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혈통정보의 경우엔 아예 친자검사를 의무화한 축협도 있으며, 그 비용을 농가와 분담하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지역과 발생하는 형평성의 문제는 여전하며, 특히 개월령 속이기의 경우 관행 수준으로 자리 잡은 지역에선 하지 않는 경우의 손해가 너무 커 양심적인 농가들이 큰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개량에 목을 매고, 좋은 밑소를 생산해서라도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을 타개해보려는 소규모 번식농들이 많다. 이 농가들이 잘못된 소를 사 피해를 보면 볼수록, 그러잖아도 빨라지고 있는 사육농가들의 이탈 행렬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전례가 없는 소값 불황의 시대, 이제는 해묵은 이 문제에 대해 일률적이고도 신속한 조치를 내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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