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68] 꿀벌이 그립다

  • 입력 2023.04.23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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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세상의 관심사는 실종된 정치, 경제위기, 전쟁, 국가 간 갈등 등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자랑은 하지만 우리 국민의 삶은 나날이 각박해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빈부격차, 고물가, OECD 최하위의 행복도·출산율, 공동체 의식의 쇠퇴, 지도자들의 무능과 일탈, 지역 간·계층 간 갈등 등 우리 내부의 구조적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그뿐이 아니다. 전 지구적 기후·환경·생태·에너지·식량위기는 결국 인류 생존의 위기로 직결될 것이 뻔하다. 그 구체적인 징후 중의 하나가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꿀벌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집단 폐사하거나 사라지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2022년 한 해만 하더라도 꿀벌 78억마리가 폐사했다고 하는데, 이는 전체 사육 꿀벌 480억마리의 16%에 달하고 있다. 이렇게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바이러스, 진드기, 응애, 말벌, 기후변화, 농약 등이라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과일류를 비롯한 모든 농작물이 타격을 받게 되고 이는 결국 생태계 파괴와 식량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나의 작은 농장에도 말로만 듣던 전 지구적 위기상황이 나타나는 것 같다. 꿀벌은 이른 봄부터 꽃이 만발하는 계절이 오면 어디선가 나타나 윙윙 소리를 내며 꽃과 꽃을 바쁘게 오간다. 그런데 올해 봄에는 과수원의 과일나무 꽃뿐만 아니라 민들레 등 온갖 야생화 꽃을 열심히 드나들던 벌들이 잘 보이질 않는다. 봄만 되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별로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문득 벌들이 새롭게 보인다.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사는 과수 농민들의 요즘 최대 관심사 역시 꿀벌이 아닌가 싶다. 꽃은 만발했는데 벌이 보이질 않는다는 탄식이다. 어쩌다 한두 마리가 보이기라도 하면 신기한 듯 귀하다. 어떤 놈은 어디서 농약이라도 마셨는지 그나마 비실비실해 안타깝다.

매실꽃은 이미 졌는데 콩알만 한 열매가 그래도 가끔 보이기도 한다. 복숭아꽃은 요즈음 만발했으나 벌이 잘 보이질 않아 안절부절이다. 사과꽃은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개화하기 시작했는데 벌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렇게 긴장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걱정이다.

대농가들은 인공수정을 시도한다고 하지만, 나같이 규모가 작은 농장에서는 그것도 그리 쉽지는 않다. 꽃가루와 석송자, 분무기 등을 구입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인공수정을 한다 하더라도 임시방편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연·생태계·인간 전체를 생각하면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이 아님은 자명하다. 기후 때문이든지 농약 때문이든지 이 모두가 주범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더이상 인간들이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됐다. 그래야만 지구를 살릴 수 있고 꿀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화사한 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이기에 농부들에게는 더욱 꿀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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