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된 한우만 혈통등록·경매출품 가능해야”

‘서류’ 믿고 KPN950 혈통우 샀다 낭패
분쟁으로 번지면 신속한 보상도 어려워
“혈통우 전용 시장, 전국으로 확산해야” 

  • 입력 2023.04.20 18:55
  • 수정 2023.04.20 18:5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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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서류만 믿고 혈통이 좋은 소를 구매했다가 검사 결과 거짓으로 판명돼 벌어지는 농가간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업계에서 검증된 한우만 혈통등록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은 한 가축시장에 나온 송아지. 한승호 기자

 

사실과 다른 이력을 지닌 소의 생축 시장 진입은 그간 농가들 사이에서 종종 문제제기의 대상이 돼 왔다. 개량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친자확인 개체가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는 소의 거래를 원천 차단할 제도적 장치는 없어 크고 작은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경북 청도군에서 소를 키우는 박천석씨 가족은 지난해 12월 13일 경북 영천가축시장에 방문했다. 이날 출품 예정으로 고지된 소들 가운데 KPN950의 후대 혈통우·고등우인 2017년생 암소 두 마리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KPN950은 지난 2014년 선발된 보증씨수소로, 보증씨수소들 가운데서도 성적이 매우 탁월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농가들이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일 정도로 우수한 정액을 생산했다. 때문에 이 소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그 후대축을 찾는 이들이 제법 있다. 

그런데 막상 시장에 가보니 이 소들은 우시장에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박씨는 수소문 끝에 축주와 연락할 수 있었고, 이윽고 농장을 방문해 사고 싶었던 소들을 직접 데려왔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자확인검사를 의뢰해보니, 그 아비축은 KPN950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해당 축주는 공교롭게도 지난해 11월에도 시장에서 KPN950으로 혈통을 기재한 암소를 판매했다가 친자확인을 거친 구매자의 반송요청을 받은 이력이 있다. 이 또 다른 사례의 구매자는 “밑소 생산을 위해 KPN950의 후대축을 찾았는데 친자확인이 돼 있지 않았다. 나중에 좋은 값을 받으려면 친자확인이 필수라 사오자마자 검사했는데 불일치였다”라고 말했다.

이 경우는 가축시장을 통해 거래했기에 ‘경매 후 하자가축’의 반송을 인정하는 영천축협의 가축시장 업무준칙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었고, 소가 떠나 있었던 기간이 길지 않아 축주도 배상에 곧바로 합의해 해결된 사례다. 그러나 박씨의 사례는 달랐다. 박씨는 소값 950만원을 비롯해 입식을 위해 들였던 운임, 임신 중이었던 송아지 폐사에 따른 수의사 비용, 그리고 98일간 들였던 사료·조사료·사육인건비 등 총 1,3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영천축협에 따르면 잘못된 소를 판매한 축주는 혈통 오류는 인정하면서도 배상 금액은 너무 많다며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폐사한 송아지에 대한 보상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박씨의 며느리 최경선씨는 “사육노동에 최저시급 기준으로 2시간씩 하루 2만원을 책정한 게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50여두를 키우는 자그마한 우리 축사에서 원하지 않는 소 두 마리를 데리고 있느라 다른 소를 입식하지 못하고, 그만큼 생산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경찰에 해당 축주를 고발한 상태로 문제의 소들을 먹이고 있어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씨는 “우리 세금과 수수료를 들이고 있음에도 정작 정보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라며 “한우 정액이 중요하다며 그렇게 체계적으로 생산하면서, 그 수정기록은 투명하지 않다. 또 그 때문에 농민이 피해를 봤는데 축협과 종축개량협회 같은 등록기관과 이를 실제 기록한 수정사 중 누구도 책임이 없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영천축협 가축시장 측은 사실관계 확인과 함께 “원칙적으로는 농가 개인 간 거래에 대해 조합에서 배상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다만 조합의 방침을 득해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찾아보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혈통정보와 관련해서는 “등록 관리 자체를 소홀히 한 부분은 없다. 농가가 수정을 등록하면 친자확인 검사 없이도 혈통등록 자체는 가능하게 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농정>은 지난 2019년에도 기사 「한우 ‘혈통 사기’ 기승」에서 한 한우 농가의 우시장 거래 피해사례를 통해 기록된 혈통정보와 실제 혈통이 일치 않는 ‘가짜 혈통 한우’가 아무런 규제 없이 가축시장에 유통될 수 있음을 보도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피해는 축주들의 고의적, 혹은 실수에 의한 잘못된 혈통정보 기입에 그 1차적 원인이 있다할 것이나, 근본적으로는 이를 사전에 방지할 체계가 미비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019년 당시 유사한 일을 겪은 뒤 적극적으로 문제제기에 나섰던 농장주 김준환씨(충남 공주)는 “당시 형사처벌 결과가 나오는 데도 8개월이나 걸렸고, 민사소송은 과정이 워낙 복잡해 기회비용이나 정신적 피해보상까지는 요구하지 않고 경비와 인건비, 사료비를 보상받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했다”라고 후일담을 밝혔다. 김씨는 이후에도 한 번에 구매한 소 가운데 50%에서 불일치가 나온 경우도 있었다며, 수정에서 등록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은 절차가 농가에서 자가로 가능한 실태를 제도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결국은 돈 때문이다. 소를 사는 사람은 혈통의 가치를 믿고 돈을 더 지불하고, 파는 사람도 정액이 좋아야 소를 잘 팔 수 있으니 모든 농가에게 양심을 바랄 수 없는 이상 이런 경우는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 농가의 신고만으로 검증 없이 혈통등록이 되는 체계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며 “처음부터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친자확인이 된 개체만 종축개량협회에 혈통등록 할 수 있게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수정관리를 하고 있다지만, 자가로 수정하는 경우 애초 거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혈통뿐만 아니라 개월령을 속이는 행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것이 힘들다면 축협이라도 나서서 이표를 직접 관리하고, 특히 현재 일부 지역축협이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축협이 친자검사를 거친 소만 우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축협들이 선거 표심이나 여론을 눈치 보지 않고 의지만 가진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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