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취재경쟁

  • 입력 2023.04.16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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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강선일 기자
강선일 기자

최근 본사 입사 이래 7년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겪었다. 중앙 주요언론 기자들은 일상다반사로 겪는 일이나 본 기자는 딱히 겪을 일이 없었던 상황. 바로 ‘취재경쟁’이다.

취재경쟁의 원인은 유전자조작체(GMO) 쥬키니호박 발견사태였다. 정부의 출하정지 조치 해제 뒤 쥬키니호박의 ‘홍수출하’로 10kg 쥬키니호박 한 상자당 가격이 최하 500원까지 떨어지던 지난 4일, 본 기자도 수많은 언론이 오가고 있던 경남 진주시 금곡면 농가를 방문 중이었다. 열심히 피해 농민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던 중, 농민에게 전화가 왔다. 한 지역 언론사의 기자가 “쥬키니호박 건 관련해 취재하고 싶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목소리가 농민의 손전화 너머 본 기자의 귀에도 들렸다. 순간 ‘아, 내가 먼저 기사 써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며 바짝 긴장했다.

농민은 “지금 농정신문 기자님 만나고 있어요. 나중에 전화할게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 기자가 아주 잠깐만 더 통화하자고 하던 목소리도 들렸다. 그 기자에겐 미안하게 됐지만, 어쩌랴. 본 기자도 급했다.

이런 류의 취재경쟁은 ‘속도경쟁’에 치중하게 해 기사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최악의 경우 기자윤리마저도 해치지만, 그럼에도 기자의 성장에 자양분이 되는 측면도 없지만은 않은 듯하다. (농업전문지라는 매체의 특성을 감안해도) 이런 경험이 사실상 처음이었다는 건 좀 서글프기도 했다. 물론 농업 관련 의제를 어느 매체가 선점하느냐를 놓고 본지를 비롯한 여러 농업전문지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게 사실이며, 이 또한 넓은 범위의 취재경쟁이다. 그러나 이처럼 특정 사안을 놓고 여러 언론이 한꺼번에 달려드는 과정에 함께한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본 기자가 그동안 다뤄온 사안들은 (중요성과 별개로) 대부분의 언론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뒀으니 말이다.

기왕 취재경쟁이 치열해진다면, 가능한 한 경쟁에 뛰어든 모든 언론이 현장 농민·시민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하겠다. 아울러 그동안 언론(특히 중앙 주요언론)의 관심 영역에서 배제됐던 농업·농촌·농민의 상황, 그리고 먹거리기본권 문제에 집중하는 계기로도 만들어야 할 테다. 그러나 바람직한 사례만 나타나진 않는 듯하다. 이번 GMO 쥬키니호박 사태의 엄연한 피해자인 생협을 ‘GMO 반대운동에 앞장섰지만 실상은 자사 식품에 GMO를 사용한 곳’인 양 취급하면서, 정작 GMO 통제·관리를 제대로 안 한 정부엔 일언반구도 없던 모 보수언론의 기사는, 이번 취재경쟁 과정에서 반면교사 삼아야 할 사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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