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㉕] 3.18 만세운동의 혼이 깃든 시장, 영해오일장

  • 입력 2023.04.16 18:00
  • 수정 2023.04.16 20:03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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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해 상설시장의 모습.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처음부터 영해시장엘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2021년 8월에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났던 영덕오일장이 궁금해서 길을 나섰다고 하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재건은커녕 철거도 덜 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임시 시장이 있기는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다음날이 근처 영해면에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영해를 찾아가게 되었다.

영해오일장은 만세시장이라 불리는 상설시장을 중심으로 5, 10일에 열린다. 만세시장이라 이름 붙여진 배경에는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일어난 3.1만세의거가 있다. 그 영향으로 영해·영덕의 장날인 18일에 만세를 불렀던 것을 기념하여 시장의 이름을 만세시장이라 했다고 한다. 국경일도 아닌데 곳곳에 태극기가 게양된 것도 그런 까닭에서 연유한 것인가 보다. 늘 그렇듯 장터에서 먹는 아침을 위해 식당을 찾으니 3.18 장터국밥집을 추천해주신다. 맛보다 우선 이런 이야기에 끌려서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지만 국밥으로 든든해져 돌아다니니 모든 게 다 괜찮아 보인다. 4월의 영해오일장은 이제 막 순을 내민 오가피, 제피, 두릅, 엄나무 등의 나물들과 각종 가자미류를 포함한 소라 등속이 대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참가자미, 토종가자미, 물가자미, 줄가자미를 늘어놓고 파는 좌판에서 조금 전까지 살아있던 줄가자미 두 마리는 미리 구입한다. 잠시 한눈 팔면 다른 사람들이 채갈 것이 분명하니 눈에 보일 때 사야 한다. 물가자미는 영덕과 영해에서 특히 많이 보인다. 소라도 정말 가지가지다. 털소라, 나발소라, 전복소라, 뿔소라, 참소라, 흑소라, 백소라 등등. 파는 분이 알려주실 땐 다 기억할 것 같더니 돌아서는 순간 모두 잊어버리고는 다시 가서 되물으며 외우려고 애를 썼다.

가끔 횟집 앞의 어항에서 돌고 또 도는 고등어를 볼 기회는 있었지만 좌판에서 살아있는 고등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영해오일장의 붉은색 고무통에서 살아 움직이는 고등어를 본다. 손이라도 베일 것처럼 날이 선 고등어의 푸른빛이 어디서도 본적이 없는 것 같아 귀하기만 하다. 누군가 사겠다고 나서면 상인의 손이 아주 빠르게 움직여 힘으로 제압하는 방법으로 고등어를 잡고 재빨리 반을 가른다. 몸이 반으로 나뉘고 꼬리가 잘렸어도 아직 파닥거린다. 굵은 소금 뿌려 구우면 기름이 자르르 흐르겠다. 사고 싶어도 참고 자리를 뜬다.

영해오일장이 서는 만세시장은 기존의 구옥들을 철거하지 않고 새로운 골조의 건축물과 하나로 연결하는 형태로 곳곳에 공간을 만들어냈다. 다른 지역의 장들도 이리 했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에 넓고 길게 뚫린 상가의 길을 걷다가 만세사진관을 만났다. 상인들의 반가운 모습, 시장의 분주한 움직임을 담은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전시를 하는 곳이라는데 문이 닫혀있어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오고 싶다.

사진관 옆엔 ‘3月 18日’이란 카페가 있다.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남매가 귀촌하여 시장통에 자리를 잡은 카페다. 비도 오고 하여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사서 마신다. 뜨끈한 커피가 몸을 덥히고 잠시 쉬니 다시 움직일 힘이 나는 것 같다. 커피맛도 제법 좋다. 다시 온다면 그때도 커피를 마시러 오고 싶다. 위안이 되는 공간이다.

더 돌다가 첫 제피를 만나 넉넉하게 한 봉지 샀다. 봉지에 담고 돈을 주고받는 중에 옆에서 인스턴트커피를 팔고 계신 분이 제피 한 줌만 달라고 한다. 내가 미처 꺼내기도 전에 제피 파는 상인이 넉넉하게 한 줌 집어준다. 커피상인은 받아든 제피를 컵라면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허기를 부르는 라면의 냄새에 제피가 어우러져 습도가 높은 오늘 같은 날 정말 탁월한 선택의 점심이 된다. 일행들과 함께 거기 같이 서서 한 젓가락 먹고 싶다는 생각이 내 인내심을 누르기 전에 그곳을 떠나기 쉽지 않았다.

영해오일장은 오욕의 시간을 거부하고 일어선 민중들의 만세소리를 담고 면면히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그 시기에 지어진 삶의 터전들을 엎어버리지 않고 기둥이나 벽으로 세우고 연결해 만든 장터라 인상이 깊었다. 돌아오는데 더 설레면서 좋았다.

 

 

영해 오일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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