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최고의 선택, 귀농

  • 입력 2023.04.16 18:00
  • 기자명 김현지(전남 곡성)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현지(전남 곡성)
김현지(전남 곡성)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나 20년, 대구에서 20년을 생활하고 이후 전라북도 고창에서 4년, 전라남도 곡성에서 12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을 고민할 때 생명과 평화라는 화두를 들고 전국을 탁발하던 실상사 도법스님을 성주성당에서 만났다. 스님은 “세상에서 생명을 살리는 가장 소중한 직업은 농부다”라는 깨달음을 전해주셨다. 그길로 탁발 순례를 1년 반 동안 함께하고 농부가 되기 위해 귀농을 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열심히 살았지만, 공허하고 보람을 느낄 수가 없었고 늘 부림을 받는 삶을 살았는데 농부의 삶은 農事의 農자도 모르고 시작했지만, 벅찬 자부심이 생겨났다. 나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실천하니 가난해도 마음이 부자였고, 생활이 늘 여유로웠다. 부모님 대에서도 농사를 짓지 않아 본 바도 없으니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그저 맨땅에 머리 박는 것과 같았지만, 첫 농사는 농부가 도망갈까 봐 하늘이 도와 잘 짓는다는 말이 있듯이 농사가 잘 되었다. 비닐도 농약도 없이 농사를 지으며 실수투성이였지만 옆집 어머니, 뒷집 할머니가 농사를 가르쳐주신 덕분이다. 실상사 귀농학교를 나오기는 했지만, 그곳에서 배운 것보다 실제 몸으로 부딪쳐 배운 농사가 참 농사였다. 농촌에는 온통 농사를 50~60년씩 지은 스승님들뿐이니까!

농사를 지으며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관계이다. 도시에 살 때는 아파트 문을 닫으면 세상과 단절되고, 원하는 사람만 만나고 살았는데 농촌에서는 모든 것이 열려 있다. 내가 마음을 연만큼 상대도 다가오고,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도 깊어진다.

농촌에 살면서 농사일을 배우고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과 더불어 사람살이를 제대로 배우며 살고 있다. 우리네 마을들이 사라지지 않고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를 곡성하고도 죽곡 삼태마을에 살면서 온몸으로 배운다.

도시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분들이 소중한 마을의 일꾼으로 함께 생활하고, 제사를 지내면 함께 모여 밥을 먹는다. 귀농 초기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도 밥을 굶을까 걱정하시며 나눠 주셨다. 그러니 절로 어머니, 아버지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농한기에는 여지없이 회관에 모여 밥을 먹으며 때론 싸우기도 하지만 다음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답다. 귀농 1호였던 나를 필두로 2호, 3호 귀농인이 들어오고 모두 마을 주민들과 잘 어울려 이장과 부녀회장을 귀농인들이 맡게 되었다.

농촌은 문화생활이 드물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신명나게 풍물을 치고, 건강을 위해 태극권도 하고, 대나무공예도 배우고, 생활목공, 기타도 배우고 불교 공부도 한다. 농민회를 통해 무경운 농사도 배우고, 토종씨앗도 지켜내고, 부당한 농정에 대해 아스팔트 농사도 지어야 하니, 빈 요일이 거의 없고 대부분 무료로 배운다. 이보다 즐겁고 보람찬 곳이 어디 있는가!

하니 농촌에 온 것은 지금까지 내가 선택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도를 닦는 것처럼 고요하고 경건하고, 농촌에 산다는 것은 돈 외에 모든 것이 여유롭고 풍족하다. 비록 쌀값과 농산물값이 똥값이 되고 농사정책이란 유사 이래로 찾아보기 힘들지만, 우리에겐 땅과 이웃이 있기에 힘을 내어 호미를 든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