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농민 목소리 빠진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고수

  • 입력 2023.04.12 11:2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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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윤석열정부가 지난 10일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기본계획)’ 내용을 최종확정한 뒤 국회로 넘겼다. 기후정의운동 단체들은 농민·노동자 등 기후위기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빠진 기본계획을 끝내 고수하려는 정부를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공동위원장 한덕수 국무총리, 김상협 카이스트 부총장, 탄녹위)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3년 제3차 전체회의를 통해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 이날 확정된 기본계획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2021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대비 산업부문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 완화 △원자력발전(핵발전) 중시정책 부활(경북 울진군 신한울 핵발전소 3·4호기의 건설 재개, 운영허가가 만료된 핵발전소의 계속 운영 등)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 및 무공해차, 수소산업 등 핵심산업 육성 등이다. 전체 내용은 지난달 22일 서울 한국과학기술센터에서 열린 기본계획 공청회 때 공개된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본계획에서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내용 중 하나가 가장 탄소배출량이 많은 산업부문의 감축 목표를 완화시켰다는 점이다. 2018년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 환산량 기준 약 2억6,050만톤이었는데, 문재인정부 시기인 2021년 10월 NDC 상에선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배출량을 14.5% 줄인 2억2,260만톤으로 줄이기로 했었다. 그러나 이번 탄녹위 기본계획에선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배출량을 11.4% 줄인 2억3,070만톤으로 만들겠다고 명시했다.

다시 말해, 정부는 2030년에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배출량(2021년 2억2,260만톤 → 2023년 2억3,070만톤)을 ‘완화’시켜, 산업계가 2021년 계획 대비 탄소 약 800만톤을 더 배출할 여유를 준 셈이다. 감축률 자체도 2021년 14.5%에서 올해 11.4%로 3.1% 줄었다. 정부 측은 산업부문의 원료수급 곤란 및 현재의 기술전망 등을 고려해 감축목표를 ‘일부 완화’시켰다고 밝혔다.

농축수산업 분야의 경우 2018년 탄소배출량이 약 2,470만톤이었는데, 2021년과 올해 기본계획의 NDC 모두 2030년까지 이를 약 1,800만톤(2018년 대비 27.1% 감축)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저탄소 구조전환을 통한 지속가능한 농축수산업 실현’이라는 추진 방향부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농업 확산 △논물 관리(저메탄 논농업 방식 보급 등), 질소비료 감축 등 저탄소 농업기술 적극 보급 △저메탄·저단백 사료 개발·보급 등의 세부과제까지, 어느 내용도 지난달 공청회에서 발표된 내용과 달라지지 않았다.

“어디서 돈이 나와 80억원짜리 스마트팜을 하나?”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기후정의동맹·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의 주최로 열린 '기후위기 역행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폐기 후 재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충남 홍성 농민 금창영씨가 발언하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제공기후위기비상행동·기후정의동맹·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의 조직들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기후정의동맹·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이 주최한 '기후위기 역행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폐기 후 재수립 촉구 기자회견'에서 충남 홍성 농민 금창영씨(왼쪽 세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제공

탄녹위가 기본계획을 최종확정 짓던 10일 낮, 기후위기비상행동·기후정의동맹·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의 조직들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농민·노동자 등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정부와 산업계의 앞잡이가 돼 지구 생태계를 파국적 기후재난 상황으로 몰아넣”으려는 탄녹위를 강력 규탄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기본계획에서 산업부문 감축목표가 오히려 완화된 것에 대해 “산업계의 민원을 알뜰하게 들어줬기 때문”이라며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산업부문의 감축 목표를 하향해 줌으로써 오히려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을 장려했다. 핵산업계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줘 수명 만료된 핵발전소를 연장 운영하며 오히려 재생에너지 비중은 낮추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참가자들은 이어 “(기본계획 논의) 과정에서 노동자, 농민 등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가 배제됐음은 물론”이라며, 탄녹위 민간위원 32명 중 산업계를 대표하는 인사는 가득하나 노동자·농민을 대표하는 위원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점, 의견수렴 없이 요식 행위로 시늉만 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이제라도 기본계획을 폐기하고 최일선 당사자들이 주체가 된 정의로운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게 기후정의운동 단체들의 입장이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농민을 대표해 참석한 충남 홍성 농민 금창영씨는 기본계획에 대해 “그들(정부·산업계 및 기본계획 수립에 가담한 전문가 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돈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서 사고하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며 “그들이 이야기하는 기술혁신이나 녹색투자, 기후테크는 지금 여기서 멈춰 지금까지의 문제를 생각해보겠다는 게 아니라, 방향을 바꿔 지금처럼 그냥 살겠다는 것이다. 무책임하다.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내용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의 기본을 망각한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금씨는 이어 “기후위기와 관련해 나오는 농업 분야 정부 대책이라는 게 스마트팜, 푸드테크, 저메탄 사료, 바이오플랜트, 바이오차, 스마트축사 등등, 대부분 영어다. 지금 시대엔 영어를 써야 있어 보이나 보다”라고 지적한 뒤 “대부분의 농민들이 한 달에 100만원을 벌지 못한다. 2,300평에서 나오는 모든 농산물을 직거래로 판매하는 나도 한 달에 60만원 밖에 벌지 못한다. 어디서 돈이 나와 푸드테크를 하고, 80억원짜리 스마트팜을 하나?”라고 쓴소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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