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의 정치, 그 자리에 장관은 없었다

  • 입력 2023.04.09 18:00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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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양곡관리법 일부개정안 현안 질의'를 위해 지난 3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질의에 답변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 장·차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이 모두 불참해 좌석이 텅 비어있다.
‘양곡관리법 일부개정안 현안 질의'를 위해 지난 3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과 질의에 답변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 장·차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이 모두 불참해 좌석이 텅 비어있다.
지난 5일 충남도청 앞에서 열린 ‘윤석열정권 규탄 충남농민 긴급 기자회견'에서 우비를 입은 농민들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거부한다”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지난 5일 충남도청 앞에서 열린 ‘윤석열정권 규탄 충남농민 긴급 기자회견'에서 우비를 입은 농민들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거부한다”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 자리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차관도 없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도 없었다. 정부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예고한 뒤 현안 질의를 위해 지난 3일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전체회의는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까지 모두 불참한 가운데 반쪽짜리 회의로 열렸다. 텅 빈 장관석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인 A4 용지엔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관련 현안 질의’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농민들은 국회의장 중재를 거쳐 민주당 수정안으로 만들어진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두고도 ‘누더기 법안’이라 일컬었다. 풍년과 흉년에 상관없이 해마다 농사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생산비가 보장되는 쌀값을 유지해 줬으면 좋겠다는 농민들의 바람을 충족하기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명시한 자동시장격리조건(초과생산량 3~5%(정부 선택), 쌀값하락률 5~8%(정부 선택))이 매우 부적절하고 실효성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날 현안 질의는 중요했다. 앞서 정부가 거부권 행사를 예고했지만 법이 반영하지 못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을 재논의해 대통령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치의 묘’를 살릴 기회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예 자리를 회피한 장·차관과 여당 의원들의 태도에선 협치를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포퓰리즘”, “남는 쌀 강제매수법” 같은 자극적 용어를 써가며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는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게다가 양곡관리법 대신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운동’이라니, 귀를 의심케 한, 국민의힘 의원 입에서 나온 이 말은 ‘쌀값은 농민값’이라 여기는 농민들을 철저히 우롱하고 멸시했기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거부한다!”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대형산불을 진화시키고 지난겨울과 올봄 지독한 가뭄에 시달린 농촌에 천금 같은 단비가 내렸던 지난 5일 충남지역 농민들이 그 비를 맞으며 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긴급하게 소집된 기자회견임에도 불구하고 충남 시·군 곳곳에서 모인 40여명의 농민들은 “농업포기 농민말살 윤석열정부 거부한다”, “수정안도 필요없다. 양곡관리법 전면개정하라” 등을 외치며 농민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한 정부를 강하게 규탄했다.

농민들은 “시장격리는 쌀의 생산과 수급, 가격보장에 대한 정부의 최소한의 책임이다. 지난해 쌀값 폭락 역시 정부가 이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 발생한 ‘시장실패’”라며 “식량위기 시대에 식량과 농업을 포기하고 최소한의 책임마저 거부한 윤석열정권을 갈아엎고 농민생존권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하자”고 선언했다.

3일부터 5일까지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둘러싼 여러 모습 중 반쪽짜리 농해수위 회의, 텅 빈 장관석 사진을 ‘메인’에 건다. 윤석열정부의 안하무인, 농민 무시, 불통의 정치를 드러내는데 적확한 장면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은 그들의 몫이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대통령 거부권 반대,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거부권 행사 결사반대의 의미로 삭발을 진행한 백혜숙 농정전환실천네트워크 이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른쪽은 경기 여주농민 전주영씨.
지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대통령 거부권 반대, 쌀값 정상화법 공포 촉구 결의대회'에서 거부권 행사 결사반대의 의미로 삭발을 진행한 백혜숙 농정전환실천네트워크 이사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른쪽은 경기 여주농민 전주영씨.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생산비가 보장되는 양곡관리법 전면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생산비가 보장되는 양곡관리법 전면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윤석열정권을 규탄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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