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저수지① 저수지가 있는 마을

  • 입력 2023.04.09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내 고향 가는 길 뜨거운 남도길 / 저편 둑 위로 기차는 가고…’

김민기가 부른 ‘고향 가는 길’의 첫 대목이다. 모르긴 해도 옛 시절의 대중가요 중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빼놓으면 고향(향수)을 주제로 한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고향을 그리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거나 감상할 때 사람들은 대체로 눈을 감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고이 담긴 고향의 풍광은 제가끔 다르다. 이 노랫말의 주인공처럼, 강둑 철로 위로 기차가 지나가는 고향 마을에 다시 찾아가서, 소년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칡뿌리를 질겅질겅 씹어보고 싶은 염원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닷가에서 난 사람은 파도와 갈매기 울음소리를 고향의 소리로 간직하고 있을 터이다.

비단 자기 살던 터를 떠나온 사람만이 그리워하는 것이 고향은 아니다. 평생을 고향에 눌러 살아온 사람도 제 고향을 그리워한다. 살고 있는 터전이 옛 모습이 아닌 까닭이다.

자, 그럼 1937년생 윤상연씨가 군대 시절에 그리워했다는 고향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아침저녁으로 점호를 할 때 소대장이 꼭 ‘고향을 향해서 묵념’을 하라고 시켰거든요. 그런데 눈을 감으면 부모 형제의 모습과 함께 꼭 떠오르는 것이 바로 고향 마을의 저수지였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거리 대부분이 동네 저수지하고 얽힌 것들이거든요. 멱감고, 고기 잡고, 썰매 타고…. 특히 저수지하고 바짝 붙어 있는 논배미가 있었는데, 비가 많이 오고 나면 저수지에 살던 팔뚝 만한 붕어들이 그 논으로 우르르 흘러들어와요. 그럼 우리는 신이 나는 거지요. 책보를 팽개치고 논바닥으로 뛰어 들어가서 붕어를 잡는다고 첨벙대다가 논 주인한테 혼나고, 학교에 가서 또 벌서고…. 그런 추억이 있으니까 군대 휴가 때 마을 들머리 모퉁이를 빙 돌아서 눈앞에 좍 펼쳐지는 저수지를 대하는 순간 와, 뭐라고 해야 하나, 마음이 환해지고…막 벅차오르는 기분이에요.”

논농사를 일정 규모 이상으로 짓는 농촌 마을이라면 대체로 인근에 크든 작든 저수지를 갖추고 있었다. 물론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서 물을 가둬 두는 수리시설이지만, 소싯적 저수지가 있는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단순히 물을 저장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고향마을의 저수지는, 자기 전답에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대려고 티격태격했던 어느 가물었던 해의 물싸움의 기억들과 동무들과 첨벙대며 물놀이를 하며 지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함께 담고 있다.

2003년 4월에 내가 찾아간 ‘저수지가 있는 마을’은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장화리였다. 도착하던 날 마을 아래쪽 ‘개심저수지’의 수면 위로는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침 곡식에 필요한 비가 내린다는 ‘곡우(穀雨)’라는 절기가 낀 날이었다. 마을회관에 도착하자마자, 이번 비가 농사에 어느 만큼 도움이 되겠느냐고 물었다.

“어이구, 단비지요. 그동안 오래 가물었거든요. 이번 비로 못자리 관리도 걱정 없이 잘할 수 있게 됐고, 밭작물도 해갈이 됐어요. 나무 심는 데에도 좋고, 여러 가지로 다 좋은데…이 비가 안 반가운 사람도 있어요. 우리 지역은 과수 농사를 많이 짓는데, 대목(臺木)에 사과나무 접붙이는 사람들은 이 시기에 비가 오면 영 낭패거든요.”

예전에는 벼농사와 밭작물에 도움이 되게만 비가 내리면 사람들이 에누리 없이 고마워했지만, 이제는 철 따라 그 생장이 다른 과일나무며 특용작물에게까지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신경써야 하게 생겼으니, 비를 주관하는 조물주도 꽤나 머리가 아프게 생겼다. 취재차 찾아간 나도 ‘단비를 몰고 온 반가운 손님’ 대접을 좀 받나 했는데…이해관계가 다른 농부도 끼어있다는 판국에 어깨를 으쓱할 처지가 못 되었다.

이 마을에는 충청북도에서도 몇째 안 가는 규모가 큰 저수지가 동네 턱밑에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늘 물 부족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마을 터주 노인들을 만나 저수지에 얽힌 이모저모를 들어볼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