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로 집중된 가축방역 체계, 지속가능하지 않아"

'가축질병방역정책 제도개선' 국회토론회

  • 입력 2023.04.04 08:28
  • 수정 2023.04.06 12:44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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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달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축질병방역정책포럼·동물보건의료정책포럼 주관·대한수의사회·축산관련단체협의회 후원으로 ‘가축질병방역정책 제도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지난달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축질병방역정책포럼·동물보건의료정책포럼 주관·대한수의사회·축산관련단체협의회 후원으로 ‘가축질병방역정책 제도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재난형 악성 가축전염병이 거의 매년 유행하고 있는 가운데, 현장을 중심으로 ‘현재의 가축질병 방역 제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잦아지고 있다. 특히 방역 핵심 인력인 수의사들 사이에선, 기능과 역할이 국가로 지나치게 집중된 나머지 농장 임상 진료체계와 민간의 현장 수의 인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축질병방역정책포럼·동물보건의료정책포럼 주관·대한수의사회·축산관련단체협의회 후원으로 ‘가축질병방역정책 제도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선 전문방역·수의·생산 등 각 분야 종사자들이 참여해 개별 방역정책에서부터 국가방역체계 그 자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를 제기했으며, 일부 요소에 대해선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홍문표 의원은 “살처분 등 가축질병으로 인한 피해를 해결하는 비용에 3년 동안 5조 이상의 국민 세금이 들어갔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해결할 것인가, 이제 정책을 갈음할 때가 왔다”라며 “가축방역은 농촌이나 축산에 관계 없는 사람들은 솔직히 아무런 관심이 없는 문제다. 이 문제를 의식하고, 가축질병 대책을 함께 만들고자 부탁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인사했다.

가장 먼저 발제에 나선 유종철 한국가축방역위생관리협회장은 거점소독시설의 실효성과 농장 자가방역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이를 전문적으로 전담할 방역위생관리업의 육성 및 활용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 회장은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산란계 닭 진드기와 관련해 전문업체가 현미경 모니터링을 통해 단계를 정의하고 적합 판정을 하고 있는데 효과가 좋아서 민간 차원에서 전문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라며 “방역위생관리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체계와 그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영주 경북대 수의대 교수는 선진국 대비 살모넬라균 관리체계가 너무 부실하다며 즉각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미국·EU·일본 모두 종계에서 산란계에 이르기까지 케이지·바닥깔짚면 등에서 분변을 살피는 환경검사를 실시하지만, 우리나라는 식용란만을 대상으로 연간 20개에 대한 미생물 검사만 이뤄진다. 이 교수는 “실질적으로 종계 단계에서 살모넬라가 있을 것인데 어떤 종류인지 알지 못하니, 백신 사용에 대한 판단도 세울 수 없다. 일단 외국처럼 반드시 환경검사를 실시해서 어떤 종류에 오염돼있는지, 어떤 방법을 써야하는지 선행돼야 한다”라며 “또 어처구니없는 수준의 식용란 검사 방법들은 조만간 빨리 바꿔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가축질병의 분류 및 진단체계 개선방안’을 발표한 김재홍 동물보건의료정책연구원장은 핵심항목으로 ‘관납백신 무상공급 축소’, ‘농장별 전담수의사’, ‘산업동물 진료표준화제도’를 들었다. 특히 농장동물 임상수의사 기피 및 고령화 현상이 심각해지는 상황인 만큼 제도적 지원책 수립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공공기관의 부담이 너무 크기에 민간의 전문가나 기관을 활용하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라며 “예를 들어 가금에서 가축병성감정실시기관으로 운영되는 민간기관이 총 24개소인데, 축종별로 조사해서 이런 기관을 국가방역의 진단 업무나 진료 모니터링에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방역현장선 설 곳 없고, 관납에 처방권 뺏겨"

농장수의사들, 현장 인력 감소 심각성 제기 

토론자 가운데 절반을 차지한 수의사들은 김 연구원장의 발제 내용을 보충하고 강조하는 데 주어진 시간 대부분을 썼다. 우연철 대한수의사회 사무총장은 “(사람의) 감염병 방역정책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가축방역 정책은 안전에 대한 정책인지, 혹은 생산에 관한 정책인지 성격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 정책의 목표나 목적에 대한 다툼이 굉장히 많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명확한 목적과 이를 위한 여러 가지 수단, 또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표를 빨리 마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과학적인 방역’은 연구와 기반 학문의 발전 없인 실행이 어렵다. 구제역 백신 국산화를 10년 넘게 이야기 했지만 지금까지도 국산화 백신이 시판되지 못하고 있는데, 검역본부의 연구 인력을 어떻게 양성하고, 또 전문성을 발휘하게 할 것이냐 하는 고민도 큰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최종영 한국돼지수의사회 회장은 방역 현장의 불필요한 역할 구분이 크나큰 비효율을 부른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농장동물 수의사들이 현장을 떠나고 있는데, 축산물 안전을 책임지는 수의사가 현장을 떠나면 국내산 축산물은 경쟁력을 잃고 식량안보는 무너질 것”이라며 “단순 수의사의 이권을 위한 외침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문제다. ASF가 터질 때마다 공무원은 탈진해서 그만두고 현장 수의사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는데, 이런 비효율적 대책 위에서 국가가 고민이 있는가, 시정조치를 요구하고 싶다”라고 질책했다.

최 회장은 “축산물 안전 확보 측면에서 질병 치료는 수의사, 방역은 국가 과연 이렇게 나눠야 맞는 것인가. 역할과 수급의 불균형, 여러 정책의 혼돈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할 때”라고 덧붙였다.

송치용 한국가금수의사회 회장은 관납백신이 농장의 질병관리를 망치는 주범이라고 다시금 강조했다. 송 회장은 “가축질병 관련 규제를 강화하면서 농식품부는 당근책으로 농가에 백신을 주기 시작했다. 계속 규제와 백신을 주고받다 보니 이제 시·군 축산과는 마치 동물약품 판매점 같다. 반면 농장동물 수의사들은 소득원이 거의 없어졌다”라며 “관납 백신은 수의사 수익만 뺏는 것이 아니라 처방권을 빼앗기에 그 피해가 농가로 돌아간다. 예를 들어 천안에선 감보로병이 계속 고병원성으로 발병했는데, 시에서 주는 마일드한 백신만 아까워서 계속 쓰다 세 번 연속 와서 망한 농장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농가에 도움이 되는 듯하지만 결국 도움이 되지 않는 관납 백신 관련 제도는 철폐되거나 피해 최소화 방안을 시급히 찾아야 한다. 소독약도 같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생산현장에 맞는 방역정책을"

한편 축산농가들은 ‘생산’을 고려한 방역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만혁 대한산란계협회 정책위원장은 질병관리등급제와 살처분 보상금 관련 문제를 지적했다. 한 정책위원장은 “두 동에 같은 계군을 두고 한 동처럼 쓰고 있는 농장에 전실을 하나만 두면 무조건 ‘동마다 전실을 구비해야 하는데 하나밖에 없으니 너는 문제야’라고 한다. 정부가 ‘하지 말라’라고 하는 걸 무조건 일률 적용하지 말고, 공무원들은 농장의 방역사항을 현장에 맞게끔 재해석하고 함께 구상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살처분 보상금 역시 불법행위가 있을 때마다 계속 삭감이 되는데 돌아보면 ‘과연 내가 그렇게나 문제가 있었을까’ 싶은 부분이 굉장히 많다. 역학조사를 하는 검역본부는 항상 모든 게 문제라는 식”이라며 “잘 돼 있다는 농장들도 찾아보려면 흠이 많은데, 특히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는 그저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흑백을 가리지 말고 농장과 협력 하에 현장에 맞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했으면 좋겠다”라고 바랐다. 

구경본 대한한돈협회 부회장도 “‘8대 방역시설’ 중 방역 효과 대비 작업상 불편이 너무 커서 도저히 운영이 불가한 전실, 내부 울타리 등은 실제 현장에 맞게 개선돼야 하고, 발생 시 살처분은 발생농장 위주로 최소화해야 한다”라며 “또한 현재 대부분의 정부 정책이 ASF에만 집중돼 있는데, 실제 농장에 피해를 주고 있는 소모성 질병에 대한 정책도 함께 마련해 달라”라고 촉구했다.

 

이동식 농림축산식품부 방역정책과장은 “최근 세계동물보건기구에서도 민간 파트너십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저희도 이제 민간 협력 없이 문제를 잘 헤쳐나가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라며 “대표적으로 병성감정기관이 여러 가지 역할을 못했던 부분이 있기에 관련 시범사업을 통해 민간 병성감정관들이 좀 더 활동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살처분 보상 문제나 소독약에 대한 내용 등도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서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행하도록 연구자, 업계와 계속 이야기하겠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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