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연탄⑧ 연탄, 그 추억의 아랫목

  • 입력 2023.04.02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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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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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파트가 좋구나! 연탄가스 걱정할 것 없고. 더운물로 집안에서 목욕도 할 수 있고….

나에게 연탄 관련 얘기를 들려주던 박영숙 씨가 드디어 기나긴 셋방살이를 청산하고, 보일러 난방 시설을 갖춘 아파트에 입주했다. 아파트의 세대마다 보일러실이 따로 있어서, 거기서 연탄으로 데운 물을 파이프를 통해 각방으로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연탄 아궁이가 보일러로 바뀌면서, 그동안 연탄불이 해오던 취사 기능은 자연스럽게 석유곤로가 담당하게 되었다. 장구한 세월 동안, 나무 땔감이나 연탄으로 구들장을 덥히는 방식으로 살아오다가, 더운물을 흘려보낼 호스를 바닥에 깔아서 방 전체를 데우는 식으로 난방의 방식이 바뀌다 보니 방바닥은 고루 따뜻해서 좋았는데…하지만 잃어버린 것도 있었다.

겨울 저녁, 고만고만한 형제자매가 이불 속에 발을 묻고서 해바라기 씨처럼 엎드려 숙제를 하고 있는데, 방에 들어온 어머니가 이불을 들춰보더니 한바탕 야단을 친다.

-이 녀석들!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 놓은 느이 아부지 밥그릇, 누가 발로 차버렸냐!

아이들은 추운 겨울날 밖에서 돌아오면 본능적으로 아랫목을 파고들었었다. 그런데 아랫목 이불 속에 두 다리를 넣었을 때의 그 따스하던 기억을 보일러가 여지없이 빼앗아가 버린 것이다. 더불어 우리의 언어생활에서도 ‘윗목·아랫목’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민들이 사는 대부분의 저층 아파트는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도록 설계돼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 생활에서 ‘연탄’은 매우 거추장스러운 필수품이었다.

-아저씨, 102동 603호에 사는데요, 연탄 300장만 배달해 주세요.

-603호면…아이고, 맨 꼭대기 층이네요. 거긴 한 장에 10원씩 더 주셔야 배달해 드려요.

꼭대기 층이라 평소 다리 아프게 오르내리는 것만도 억울한데, 연탄장수의 그런 반응을 접하고 나면 속이 상하더라고 박영숙 주부는 얘기한다.

“연탄을 한번 들이려면 웃돈을 얹어주면서도 괜히 눈치를 봐야 하고…. 그뿐인가요? 계단에다 신문지를 미리 깔아두지만, 그분들이 집주인 생각해서 조심조심 져 나르는 게 아니니까, 배달 끝나고 나면 6층부터 1층까지의 계단 전체를 물로 씻어내는 대청소를 해야 한다구요.”

1980년대 후반, 특히 88서울올림픽을 앞둔 시점부터 연탄 소비추세가 하향곡선을 긋더니, 90년대를 거치면서 급전직하하기 시작했다. 고층 아파트들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보일러의 연료가 가스나 석유로 바뀐 까닭이다.

“가스보일러로 바뀌니까 이건 뭐 천국이죠. 우선은 냄새 안 나지요, 시간 맞춰서 탄불 갈아야 할 텐데 그런 걱정할 필요 없지요, 더운물을 맘대로 쓸 수 있게 됐으니, 화장실 문 두드리면서 그만 씻고 빨리 나오라고 식구들끼리 아옹다옹 안 해도 되지요, 하하하.”

하지만 연탄집게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가스보일러를 사용하며 살게 된 것이 이 주부에게는 날개를 단 듯이 감격스러웠는지 모르지만, 수원역 뒤편 ‘대성연탄’의 김용덕 사장에게는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지만, 그래도 아직은(2001년 9월 현재) 연탄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터에, 쉽게 폐업을 할 수가 없더라고 했다.

다시 박영숙 씨가 들려준 ‘연탄 때던 시절’의 추억 한 토막.“아침에 등교할 때 ‘엄마, 내 신발!’ 그러면 엄마가 항상 신발을 챙겨다 주셨거든요.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신고 등교했는데, 구두에 발을 쓰윽 넣으면 참 따뜻했어요. 아침마다 늘 그랬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왔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셋방살이하는 처지라 신발장도 변변히 없었잖아요. 그러니 겨울철 아침에 문 열고 나가서 구두를 신으면 차갑지요. 어떨 땐 서리나 눈발이 신발 바닥에 서려 있기도 하고요. 엄마는 내가 그런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는 것이 싫었던 거예요. 그래서 아침에 밥 지으면서 내 구두를 연탄 아궁이 옆에 갖다 놓으셨다가 내가 신발을 찾으면, 따뜻하게 온기가 스며 있는 그 구두를 댓돌 위에 올려놓으셨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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