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봄, 히어리의 꽃 등불에서

  • 입력 2023.03.26 20:28
  • 기자명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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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꽃 등불을 주렁주렁 매단 산청 성심원 둘레길의 히어리.
노란 꽃 등불을 주렁주렁 매단 산청 성심원 둘레길의 히어리.
고깔모자 쓴 병정 닮은 히어리꽃 3형제.
고깔모자 쓴 병정 닮은 히어리꽃 3형제.
꽃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의 어린 히어리꽃.
꽃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의 어린 히어리꽃.
지리산 둘레길 주천 구간 히어리꽃 등불 아래에 선 길동무들.
지리산 둘레길 주천 구간 히어리꽃 등불 아래에 선 길동무들.

지리산의 봄은 코로나19 파동과는 무관하게 해마다 연초록 새순과 온갖 꽃들로 숲을 화려하게 장식해 왔지만 이번 봄은 2020년 이후 마스크로부터 해방된 첫봄인지라 가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그동안의 억눌림을 봄꽃으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충분히 이해가 가기도 한다.

특히 섬진강 매화마을이나 구례 산수유마을 그리고 홍매로 유명한 화엄사는 말 그대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2023년의 봄이다. 그리고 만나기 힘들긴 하지만 봄의 진객인 노루귀나 바람꽃 등을 찾아 깊은 산속을 헤매는 들꽃 애호가들이 SNS에 올리는 화려한 들꽃 사진들에서도 절정으로 치닫는 봄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지리산의 진정한 봄은 히어리가 피우는 그 노란 꽃 등불에서 시작된다고 필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지리산의 깃대종으로 동물은 반달가슴곰이고 식물로는 히어리인데, 유독 히어리를 편애하는 까닭은 이른 봄에 피는 귀걸이 닮은 노란 꽃도 꽃이지만 요즘처럼 엄중한 기후위기의 시대에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될 만큼 지리산 자락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널리 퍼진 그 기특함 때문이다.

실제로 히어리는 1997년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멸종위기종에서 해제되었다. 게다가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드는 그 단풍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순우리말 이름인 히어리는 산속으로 시오리 정도는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기도 하다.

얼마 전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환경부로부터 조건부 승인을 받음으로써 지리산의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중단되었던 케이블카 사업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 시점에서 지리산 깃대종 히어리의 끈질긴 생명력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숲의 자정 능력을 믿어준다면 지리산이 뭇 생명의 지속 가능하고 안전한 삶터로 유지되리라 필자는 굳게 믿는다.

지리산의 봄을 23번째로 맞는 필자가 지리산을 찾는 상춘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매화나 산수유처럼 화려한 꽃들에게 주는 눈길만큼이나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들꽃들도 관심 있게 살펴 봐주길 부탁드린다. 모든 풀과 나무들은 제 나름의 꽃을 피운다는 말이 있듯이 길섶이나 공터에서 만나는 봄맞이꽃이나 꽃다지 그리고 냉이까지도 제때를 알고 혼신을 다해 꽃을 피우고 있다.

물론 무릎 꿇고 자세히 보아야만 그 아름다움을 접할 수가 있긴 하지만…. 추운 겨울을 꿋꿋하게 넘긴 배추도 그 노란 장다리꽃을 피우지 않던가. 이 봄, 화려하고 귀한 꽃들에만 열광하는 걸 보면서 이 또한 외모지상주의의 한 단면은 아닐까 우려하는 필자의 생각이 논리의 비약이란 소릴 들을지도 모르겠다.

봄꽃들이 하루 30km의 속도로 북상하는 이 눈부신 봄날에 히어리가 밝힌 노란 꽃 등불로 위태롭기만 한 지리산이 좀 더 환하게 밝아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해서 22년째 유정란 농사를 짓고 있는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의 지리산 자락 사진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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