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외국인노동자 단속에 성난 농심 “그럼 농사는 누가짓냐”

여주 농민들 “농촌 인력난 해결 위한 근본 대책부터 마련해야”

  • 입력 2023.03.26 18:00
  • 수정 2023.03.26 20:21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17일 경기도 여주시청 앞에서 열린 ‘외국인 농업노동자 단속 중단 및 농업인력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여주지역 농민들이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두고 이뤄진 미등록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단속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7일 경기도 여주시청 앞에서 열린 ‘외국인 농업노동자 단속 중단 및 농업인력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여주지역 농민들이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두고 이뤄진 미등록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단속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법무부(장관 한동훈)의 대대적인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단속이 농촌 인력난을 심화시키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2일부터 ‘불법체류 외국인 합동단속’을 경찰청·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해양경찰청과 함께 진행 중이다. 올해를 ‘불법체류 감축 5개년계획’ 추진 첫해로 정한 법무부는 ‘불법체류 외국인’들에 대한 대대적 단속 및 추방조치를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봄철 농번기에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농민들은 그 어디서도 인력을 구할 수 없어 부득이하게 미등록 노동자라도 고용하지 않으면 농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근본적 대책 고민은 없이 정부가 단속에만 열을 올리는 건 결과적으로 농촌 인력난을 가속시킬 뿐이라는 게 농민들의 목소리다.

일례로 경기도 여주시의 경우 약 130여명의 미등록 외국인 농업노동자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에 의해 연행됐다. 미등록 노동자를 고용한 농민에겐 고용 인원당 200만~300만원씩의 벌금이 부과됐다.

지난 17일 여주시청 앞에선 여주지역 농민단체들의 연대체인 ‘농업인력수급여주대책위원회(대책위)’ 주최로 ‘외국인 농업노동자 단속 중단 및 농업인력에 대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대책위는 “현재 농업인력의 80~90%가 외국인노동자로 구성돼 있으나, 그중 취업비자 근로자, 계절근로자 등 합법적 농업인력은 10% 미만으로 추정된다. 계절근로자 제도는 상시 근로가 가능한 축산업, 대규모 시설원예 농가 위주의 인력 수급정책”이라며 “배추·고구마·감자·인삼 등 노지 농업은 그 특성상 30일 이내 단시간에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며 그중 80% 이상은 봄, 가을 농번기에 편중돼 있다. 현 정부의 외국인노동자 고용 정책은 노동 집약적인 농업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이날 여주 농민 고석재씨의 울분 어린 호소는 참가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여주 가남면에서 친환경 고구마·감자를 재배하는 고씨의 농장에선 지난달 1일과 22일 두 차례에 걸쳐 총 18명의 외국인노동자가 연행됐다. 특히 지난달 22일엔 출입국관리 당국 직원들이 새벽부터 외국인노동자 숙소를 에워싸고 3시간 30분간 대치한 끝에 노동자들을 연행해 갔다. 고씨는 ‘불법 외국인’을 고용했다는 이유로 총 5,0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고씨는 “나도 당연히 불법체류 노동자를 고용하고 싶지 않다. 내국인 또는 합법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고 싶다. 그러나 그 어디서도 합법 노동자를 고용할 방법이 없다. 농촌 고령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내국인 인력도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 벌금이라도 내면서 불법체류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들여온 건 결국 정부 아닌가”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무나 억울해서 시청으로, 출입국관리사무소로, 국회로 가서 호소했다. 나도 합법적인 노동자를 고용해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고. 그러나 출입국관리 당국 측은 ‘누가 불법체류자 고용하라고 했냐?’라고만 했다. 난 그래서 ‘당신들은 그 불법으로 생산한 농산물을 왜 먹냐? 불법으로 생산했으니 불법농산물 아니냐? 왜 싸게 구입해서 먹고 그 책임은 내게 있다는 거냐?’고 했다. 그럼에도 출입국관리 당국이 계속 내게만 책임을 묻자, 분노해서 산으로 가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도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외국인노동자 집중단속을 중단하고 농민이 합법적 틀 안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대책을 정부·지자체·농협, 그리고 농민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

대책위는 법무부 등 정부 당국이 외국인노동자 없이는 농업생산이 불가능한 객관적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농번기 정부의 대책 없는 외국인 인력 단속 즉각 중단 △정부의 농업인력 수급 대책 마련 △정부의 농민에 대한 범죄자 취급 중단 △‘농작업 전문 인력업체’의 별도 허가 통한 단기인력 고용 농가 편의 제공 등의 대책을 촉구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