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보다 낫지예, 같이 밥도 해묵고 즐거워요!”

경남도 ‘찾아가는 빨래방 서비스’, “어르신들 몸에 와닿는 복지”

전국 도 중 유일, 실생활 도움·관계형성·저소득 일자리 일석삼조

  • 입력 2023.03.24 10:35
  • 수정 2023.03.25 09:37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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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이불 빨기 힘든데 이래 해주니 너무 고맙지예. 딸보다 낫고 아들보다 낫고 며느리보다 낫지예. 즈그도(자식들도) 바쁘니까 와서 몬해요. 빨래 때문에 많이 모이고 회관에서 같이 밥도 해묵고, 커피도 묵고 즐거워요.”

지난 20일 경남 창원시 진북면 학동마을회관에 이불 빨래를 맡기러 나온 윤일연 씨(84)의 말이다. 이 마을엔 30여 가구가 사는데 주로 80대가 많다. 빨래 차가 온 이날, 최고 연장자인 96세 왕언니까지 주민 1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연신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를 배경으로 마을잔치 같은 분위기에서 점심밥을 나눴다. 세탁을 맡은 마산지역자활센터 직원들도 함께했다.

공나윤 경남광역자활센터 팀장은 “세탁기가 계속 돌기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식사하기 어려운 편인데, 마을에서 국수나 부침개 같은 걸 늘 내주신다. 어르신들은 찬이 없어도 같이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걸 가장 좋아하시니 밥을 떠나 저희도 좋다”고 말했다.

마을회관 둘레에 걸린 빨랫줄에는 겨우내 묵은 때를 벗어낸 색색의 이불들이 봄바람에 펄럭였다. 빨래만 맡기고 돌아간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빨래가 마를 때까지 회관에서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 20일 경남 창원시 진북면 학동마을회관에 이불 빨래를 맡기러 나온 주민들.
지난 20일 경남 창원시 진북면 학동마을회관에 이불 빨래를 맡기러 나온 주민들.

이날 빨래는 오전 9시 40분쯤 시작됐다. 15가구에서 이불 35채가 나왔다. 빨래는 보통 오후 3~4시쯤 끝난다. 겨울을 난 직후인 3~4월경 수요가 가장 많다. 코로나19 때도 빨래는 쉬지 않았다. 감염을 우려한 일부 마을만 자체적으로 신청을 멈췄다.

‘찾아가는 빨래방 서비스’는 경상남도(지사 박완수)가 지난 2015년부터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노인·취약층 대상 무료 빨래 서비스다. 시범사업을 거쳐 2017년부터 도내 전역으로 확대됐다. 세탁기 4대가 장착된 특수 트럭 6대가 도내 마을 곳곳을 연 1~2회 찾아가 가정에서 처리하기 힘든 대형 빨래감을 세탁해준다.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9개 도 가운데, 도 단위로 빨래 서비스를 하는 곳은 경남도뿐이다. 연간 총 사업비는 5억2,300만원이며 경남광역자활센터가 6개 권역 팀으로 나뉘어 활동한다. 빨래차량 6대 가운데 4대는 도비 100%로 마련됐고, 2대는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원했다. 하루 평균 이용 인원은 권역별로 적게는 8명에서 최대 25명, 빨래 수량은 약 15~35채다. 도내 전역에서 시행한 2017부터 지난해까지 수혜 인원은 6만9,740명에 달한다.

이 사업은 빨래에만 그치지 않는다. 외로운 농촌 노인들에게 빨래 차는 반갑고 의미 있는 관계맺음이 되기 때문이다.

세탁을 진행하는 나영기 마산지역자활센터 팀장은 “촌에 젊은 사람들이 없으니 우리가 가면 반겨주신다.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지만 노인들에겐 널고 개는 것도 힘들다”면서 “마을이 많다 보니 많이 가도 1년에 두 번이라 다들 아쉬워한다. 자주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찾아가니 정도 쌓이고 어르신들 안부도 묻고, 그새 돌아가셨다고 하면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속속들이 사정까진 몰라도 근황은 잘 알게 된다”고 말했다.

유현숙 마산지역자활센터 팀원은 “어르신들은 빨래도 중요하지만 일단 사람이 오면 반갑고 즐거운 거다. 사실 집집이 거의 독거다. 자식들 다 나가고 쓸쓸하고 외롭다. 다 해드릴 테니 들어가 계시라고 해도 여기 앉아서 안 가신다”면서 “우리가 이런저런 얘기 하는 것도 좋아하신다. 어쩔 땐 자식보다 가깝다. 단 하루지만 외로움이 채워지니까. 누군가 나를 위해서 해준다는 게 기쁨이고 그래서 우리도 기분 좋고 보람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빨래는 어쩌다 한 번씩 자식들이 와서 해줄 수도 있지만, 자식은 어느 정도 지켜야 할 선이 있잖나. 이분들이 자식들한테도 그렇고 어디 가서 힘들다 말 못하는데, 가끔가다 우리한테 하소연하신다. 그러다 보면 맘 아픈 부분도 많이 보인다. 우린 듣고 흘릴 수 있으니까 편하게 말씀하시니 그게 좋다”고 말했다.

홍삼주 경남도 노인복지과 계장은 이 사업 대해 “보통 복지사업은 단순히 돈을 지원하거나 실제로 찾아가더라도 안부 정도 물어보고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빨래 서비스는 찾아뵙고 얼굴 보고 안부 확인하면서 실제로 도움도 되니 어르신들의 몸에 와닿는 사업”이라면서 “자활사업이랑 묶여있어 저소득층이 자립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하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세탁을 마친 이불 빨래들이 마을회관 앞에 설치된 빨랫줄에서 건조되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두세 시간 정도면 마른다. 비가 오면 빨래는 보통 마을회관 안에서 말리거나 탈수 뒤 가정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세탁을 마친 이불 빨래들이 마을회관 앞에 설치된 빨랫줄에서 건조되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두세 시간 정도면 마른다. 비가 오면 빨래는 보통 마을회관 안에서 말리거나 탈수 뒤 가정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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