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66] 따스한 봄날

  • 입력 2023.03.26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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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어린 시절, 추운 겨울을 지나 햇볕이 따사로워 지면 양지바른 초가집 흙 담벼락에 동네 아이들과 옹기종기 기대서서 따스한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얇은 겨울옷 사이로 스며들던 따스함이 지금도 느껴지는 듯한 포근한 봄날이다.

그러나 농장 밖의 세상은 봄날이 가져다 주는 따스함을 느끼기가 힘들다. 역사를 왜곡하고 민주주의는 퇴보하고 농업․농촌의 본질적 가치는 대놓고 무시하고  있다. 민족의 자긍심은 내팽개치고 남북의 긴장관계는 군사독제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 쌀 농가의 최소한의 가격(소득)안정장치인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정쟁으로 침몰하고 있다. 친일 식민사관에 함몰된 무능한 세력이 제 몰락하는 줄 모르고 함부로 칼춤을 추어대는 난장판이 되고 있다.

세상은 춥고 시끄럽고 비상식적으로 돌아 가지만 농장은 따뜻하고 조용하고 상식적이다. 자연스럽다. 따스한 봄볕을 온 몸으로 만끽하며 작은 농부는 작은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봄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자칭 탈 화학비료, 탈 화학농약, 탄소발생 최소화, 에너지 최소화를 지향하는 작은 유기농장이니 거의 몸으로 농사짓는다.

당연히 사과 과수원이기 때문에 사과나무 관리가 최우선의 농사다. 금년에는 사과나무 40 그루를 더 심기로 했다. 4×5미터 간격으로 식재했던 시나노골드(황금사과) 사이 사이에 미야비(후지사과)를 한 그루씩 더 심어 4×2.5미터 간격이 됐다. 현재 30여 그루의 미야비를 이미 키우고 있는데 시나노골드 보다는 생육이 좀 나은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미야비 후지 m26 자근 특묘' 40그루를 구입했고, 구덩이도 파고, 퇴비와 흙도 마련하고, 2미터 지주대도 세우고, 묘목을 심었다. 물도 흠뻑 줬다.

그냥 관행 사과농사도 쉽지 않은데 유기농 사과 농사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온 몸으로 느끼며 농사지어온 지 벌써 8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내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는 사과농사 지으며 사과나무 한 그루라도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절이다.

사과농사가 주업이지만 한두 그루씩의 배, 복숭아, 감, 매실, 체리, 산딸기 등도 있으니 봄이 되면 전정도 해줘야 하고 유기 약제도 뿌려 줘야 한다.

그 밖에도 경운하지 않아도 되는 작은 틀밭도 있다. 양지바르고 물 빠짐이 좋은 농막 앞의 틀밭을 물 빠짐이 좋지 않은 아래쪽으로 옮겨 고랑을 깊게 파고 벽돌로 가장자리를 막았다. 틀밭이 있던 곳에는 사과나무를 심었다.

또 조그만 무경운 밭도 있다. 무경운 밭은 자닮 조영상 사장이 권고하는 방식이다. 가을 수확이 끝나면 부직포를 걷고 퇴비와 용과린 등을 그냥 밭 표면에 골고루 뿌려준 다음 다시 부직포를 덮어 주고 겨울을 나면 된다. 봄이 되면  지난해 심었던 바로 그 자리에 고추나 토마토 모종을 또 다시 심을 계획이다. 봄에 밭을 갈지 않아도 되고, 고추나 토마토 지지대도 매년 뽑지 않아도 되니 농사짓기가 힘이 많이 들지 않아서 좋다.

나날이 따뜻해지는 봄날에 이런 저런 농사일을 나열해 보았다. 그래도 매일 힘 닿는데 까지 농사 일을 하며 땀 흘리는 것이 농장 밖의 어수선한 세상을 향한  분노를 다소나마 달래주는 것 같아 좋다. 몸은 좀 힘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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