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제 나라 국민에겐 단호하게 외국에는 관대하게

  • 입력 2023.03.26 18:00
  • 기자명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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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강제 동원에 관한 일본 사과와 전범 기업의 배상 관련 내용을 다룬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구상권 행사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며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정했고 제3자 변제를 하겠다며 일본에 걱정 말라고 했다.

또한 교토 통신에서는 일본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과 독도문제를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이 되레 윤석열 대통령을 걱정해줬다고 한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제 나라 국민의 피해는 나 몰라라 하고 가해자에게 걱정말라고 했다면 일제 강점기의 부역자와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위안부 합의와 독도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후쿠시마 해산물 수입 규제에 대한 입장도 예측이 된다. 피해는 제 나라 국민이 보고 상대방 나라는 밑질 게 없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 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국내 민생법안인 양곡관리법과 노조법 등에 대해서는 무조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단호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쌀 자동시장격리제가 포함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무조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니, 국민들에게는 단호하고 일본에는 관대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양곡관리법 수정안이 통과됐다. 이번에 통과된 수정안은 벼 재배면적 증가 시 정부가 시장격리를 하지 않을 수 있고, 벼 재배면적이 증가한 지자체에 대한 매입물량 감축을 허용했다. 또 초과생산량 3~5%, 가격 5~8% 하락으로 자동시장격리 조건을 완화했다. 농민들은 생산비가 보장될 수 있고 국민들의 식량주권을 지킬 수 있는 양곡관리법을 만들어 달라고 했으나, 현장에서 요구하는 법은 온데간데없고 법을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험난한 과정을 통해 양곡관리법 수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쌀값 안정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1년산 쌀은 약 7.5% 초과 생산됐다. 7.5% 초과생산의 결과가 45년 만의 최대폭락이었다.

국민의 주식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쌀값을 보장하겠다는 진정성 없이, 통과되든 말든 농민들의 삶을 바꿀 수 없는 ‘누더기’ 양곡관리법은 필요 없다. 전국 각지에서 ‘생산비가 보장되는 쌀 최저가격제’를 포함한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을 요구하며 투쟁을 선포하고 있다. 파악된 바로는 50여 곳이 넘는다. 이후 농민들의 요구는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다.

지난해에는 생산비 폭등과 쌀값 폭락 속에 전국에서 논을 갈아엎었지만, 올해는 논이 아니라 여의도와 용산을 갈아엎는 투쟁으로 격화될 것이 자명하다. 두 차례나 본회의 상정이 미뤄지고 그 과정에 현장 농민들의 의견과는 점점 더 멀어졌으니 정치권에 대한 기대감은 바닥에 떨어진 상태다.

2021년 기준 식량자급률은 44.4%, 곡물자급률은 20.9%다. 쌀자급률이 84.6%인데 왜 쌀이 남는다는 건지 모를 모순적 상황인데, 수입하는 쌀 때문에 국내에 쌀이 남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2023년 농식품부 예산에 수입쌀 매입 예산은 25%나 인상했는데 우리 쌀 생산비는 왜 보장을 못하는지 궁금하다. 수입 쌀을 사오는 데에는 후한 예산을 편성하면서 우리 쌀에는 생산비 보장과 양곡관리법 개정 요구 중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권까지 운운하는 모습이 한일 정상회담 모습과 흡사하다.

‘농사는 천하의 대본’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니다. 이는 억만년이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이다. 사람이 먹고사는 식량을 비롯해 의복, 주옥의 자료는 말할 것도 없고 상업, 공업의 원료까지 하나도 농업 생산에 기대지 않는 것이 없느니만큼 농민은 세상 인류의 생명 창고를 그 손에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돌연히 상공업의 나라로 변해 하루아침에 농업이 그 자취를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이 변치 못할 생명 창고의 열쇠는 의연히 지구상 어느 나라의 농민이 잡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농민의 세상은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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