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 한 단 300원’ … 그 농민이 도매시장 출하를 않는 이유

터무니없는 경매 결과 … 농민에겐 ‘으레’ 있는 흔한 일

생산비는 고사하고 적자 피할 길 없는 가격 결정 구조

  • 입력 2023.03.26 18:00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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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20일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일원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 임선택씨가 고수를 수확하고 있다. 지난 10일 ‘고수 한 단에 300원’이라는 경매 결과를 받아든 임씨는 이후로 시장 출하를 하지 않고 직거래로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 20일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일원의 비닐하우스에서 농민 임선택씨가 고수를 수확하고 있다. 지난 10일 ‘고수 한 단에 300원’이라는 경매 결과를 받아든 임씨는 이후로 시장 출하를 하지 않고 직거래로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 10일 강서시장에서 400g 고수 한 단이 300원에 거래됐다. 이는 같은 날 강서시장에서 거래된 동일한 ‘특(1등)’ 등급의 가격이 최저 800원에서 최고 2,300원임을 감안할 때 최저가격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고수 10단이 담긴 4kg 한 상자의 가격은 겨우 3,000원. 이날 고수 31상자를 시장에 낸 농민은 9만3,000원을 손에 쥐게 됐다. 기가 막힌 경매 결과를 받아든 충청남도 예산군의 농민 임선택씨는 물건을 낸 도매법인의 경매사에게 연락을 시도했고, 돌아온 경매사의 대답은 다소 의아했다. “예산군에서 올라온 물건을 본 적 없고, 300원이란 가격도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매법인의 경매사 모르게 경매가 진행됐다면 불법 기록상장이 이뤄진 건지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2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경매사는 “경매시간이 지난 뒤 물건이 들어온 것으로 확인되고, 대리경매사가 경매를 진행한 결과다”라면서 “물건을 직접 봤으면 확실히 답할 수 있겠지만 낙찰해간 중도매인이 ‘노란 잎’이 많았다고 얘기했다. 그럼에도 시세를 생각할 때 300원이란 가격이 말이 안 되는 만큼 결국 중도매인과 협의해서 단당 200원씩을 더해 정산한 건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지난 20일 만난 임씨는 “당일 수확해서 시장에 보낸 고수가 짧은 시간 내 노랗게 뜰 이유가 없다. 신규 출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후려치기’를 당한 것 같단 기분을 떨칠 수 없다”라며 “주변 농민들에게 이야기를 전하니 ‘너도 당했구나, 나도 당했었다’, ‘그거 안 겪어본 사람 없다, 그런데 뭘 어떻게 하겠냐’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얼마나 빈번하게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저렇게 말들을 하시나 싶어 씁쓸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경매사가 앞으로 물건 보낼 때 문자 한 통 보내면 신경을 쓰겠다고 했는데, 경매 전 경매사에게 연락을 취한다고 경매 가격이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고 도매시장의 경매 구조와 제도 자체가 농민들을 농사짓지 못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시장에 낸 400g 고수 한 단의 가격은 300원인데, 그 물건이 유통에 유통을 거쳐서 소비자에게는 130g에 3,000원 이상으로 팔리니까 그걸 보는 농민들 마음이 어떻겠나”라며 “지난번 그 일 이후 시장에 물건을 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시설하우스를 완공하고 처음 심은 작물이었는데, 기대에 차 물건을 보낸 시장에서 그런 가격을 받고 나니 다시 출하할 마음이 들지 않아 직거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직거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냐 하는 의문 또한 지울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토로했다.

임씨에 따르면 충남 예산에서 외국인 인력을 사용할 때 드는 비용은 하루 12만원 수준이다. 한 명이 하루 동안 평균적으로 고수 10상자 정도를 수확하는데, 지난 10일 경매 결과대로라면 다른 생산비를 차치하고 1명의 외국인 인력을 사용한다는 전제 아래 인건비만 따져도 하루 9만원 적자를 보게 되는 셈이다. 농민 본인의 인건비는 계산할 엄두조차 낼 수 없다는 게 현장 농민들의 전언이다. 임씨는 고수 한 단 300원이라는 경매 결과를 받은 날 하루 30만원 이상의 적자를 봤다고 설명했다.

하루아침에 전날 대비 절반 이하로 폭락하는 시장 경매 가격은 몇몇 농민에게만 벌어지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농민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비일비재한 일이다. 강원도의 한 농민도 20개입 애호박 한 상자를 500원 받고 판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해당 농민은 “대다수 농민이 가장 보편적으로 출하하는 방법이지만 시장 경매는 농민들에게 복권이랑 똑같다. 생산비 보장이라는 개념이 통하지 않는 게 시장이고 이미 시장에 물건을 낸 이상 경매를 무르고 다시 가져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구조기 때문에 얼마를 받을지 모른 채로 출하를 하고, 경매사가 결정한 가격이 그냥 그날 수취가격이 되는 거다”라며 “풍년이라 시세가 떨어져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한 상자 2만원에서 2만5,000원 정도를 유지하던 감자도 어느 날엔 1만원 수준으로 경매 가격이 폭락하곤 한다. 현장 농민 누구나 매년 일상처럼 겪고 있는 일이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시장 경매제도의 불합리함을 겪어 내고 있는 농민들은 거래 개혁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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