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민이 믿고 살 곳은?

  • 입력 2023.03.19 18:00
  • 기자명 채호진(제주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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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진(제주 서귀포)
채호진(제주 서귀포)

올 1월에 제주에는 엄청난 한파가 왔다.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게 큰 한파가 아닐지 모르지만 제주의 평상시 기온으로는 큰 한파였던 것 같다.

문제는 농작물이었다. 월동작물들이 전부 냉해를 입은 것이다. 브로콜리, 양배추, 월동무 등 대부분이 얼어버렸다. 농가들은 어떠한 대책도 세울 수가 없었다. 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농민들이 할 수 있는 건 그냥 빨리 날이 풀리길 바라는 것밖에 없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곳은 제주도 내에서 월동무를 최대로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기에 주변 농민들의 걱정을 바로 곁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월동무인 경우 거의 대부분이 냉해를 입었다. 행정에서 직접 나서 확인을 한 결과 100% 냉해를 입었다고 언론에도 나왔다. 한파 피해 상황을 신고받고 농작물 재해보험 조사도 시작되었다. 그런데 농협보험에서 나온 조사원들의 조사는 황당하기만 하였다.

월동무 하나가 반 이상 얼어있는데 피해율 산정을 50%로 하였다. 반 이상이 얼었으면 상품가치가 아예 없게 돼 폐기처분을 해야 하는데 보험에서는 반을 팔 수 있다는 논리였다. 무를 반만 잘라서 상품으로 팔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농협보험에 전화를 해 따져 물었지만 답변을 들을수록 화만 치밀어 올랐다. 보험에서 피해율 산정은 어쩌고 저쩌고 전문용어를 계속 사용하며 설명을 하였다. 그래서 결론은 얼지 않은 부분은 가공용으로도 사용 가능하니 그렇게 피해율 산정을 하는 것이라는 설명. 이것이 농민들이 믿고 가입한 농협보험의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농업을 몰라도 아예 모르는 일반 보험회사의 대답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과연 어느 농가가 그 높은 인건비를 주며 작업을 해서 가공용으로 판매를 할 것인가. 해마다 생산비도 건지지 못해 밭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일상을 눈꼽 만큼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냉해로 피해율이 50%가 나왔어도 보상이 그만큼 되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자기부담금 20%가 적용되어 농민에게 적용되는 보험금은 자기부담금을 뺀 30%만 보상이 된다. 자기부담금은 자기과실과도 같다. 방제를 제때 안 하거나 농가의 실수로 이루어진 피해에 대해서 자기부담금이 적용되는 것은 이해를 한다. 하지만 우리 농민이 한파를 몰고 온 것도 아니고 하늘이 하는 일을 우리 농민이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또한 농민의 탓으로 자부담 20%를 공제한다. 농민을 위해 만든 농작물 재해 보험이 농민을 두 번 울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이번 한파 피해에 대한 농식품부의 대처는 농민들을 더 분노하게 한다. 한파 피해를 입은 월동무를 산지폐기해야 피해를 입지 않은 무의 가격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지만 농식품부는 산지폐기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농민의 아픔이 아니라 농산물가격의 상승이라고 한다. 그 결과 산지폐기가 이루어지지 않은 농가들의 생산작물은 가락동 시장이나 다른 지역의 시장으로 출하를 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참담한 가격이 결정돼 농가는 오히려 이중의 피해를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오늘도 계속 진행형으로 가고 있다. 제주 월동채소 농가들이 믿고 의지할 곳은 없다. 보험도 행정도.

이제 계절적으로 봄이 온다. 제주 농민들은 봄 농사를 지으려 밭을 정돈하고 준비해야 하지만 아직도 썩어들어가는 월동무를 밭에 그대로 놔두고 지켜보고만 있다. 제주도나 농식품부가 혹시나 새로운 대책을 내세워 해결해 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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