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회 깃발 놓지 않겠다, 단 한 걸음씩이라도 함께!”

인터뷰 l 김기형 전농 충북도연맹 20기 의장

  • 입력 2023.03.19 18:00
  • 수정 2023.03.19 18:51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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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평생의 터전이 파헤쳐지고 있다. 떠나본 적 없고, 떠나고 싶다 생각한 적 없던 마을. 산업단지 개발로 강제 수용을 앞둔 마을 뒷산은 속살을 훤히 드러냈다. 가슴 한복판이 파헤쳐진 듯한 상황에서도 도연맹 의장직을 시작하며 결코 농민회 깃발을 놓지 않겠다는 사람. 농민운동가로서 단호한 결기가 배어 나오는 김기형 의장(57)을 지난 15일 충북 진천군 이월면 자택에서 만났다. 

김기형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북도연맹 20기 의장. 한승호 기자
김기형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북도연맹 의장. 한승호 기자

인선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했다. 부담이 크겠지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우리 회원·활동가들에 대한 믿음이 있다. ‘설마 나보다는 낫겠지, 근데 왜 움츠려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만나보면 정말 다들 상상 이상으로 몹시 어렵다. 농촌의 현실이자 다 드러내진 못하는, 애타는 지점이다. 어렵다 보니 다들 책임감은 있지만 나서질 못해 죄책감도 느낀다. 우리가 서로 이해하며 한 발자국만이라도 같이 가면 좋겠다. 그래서 ‘전적으로 책임지려고 하지 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조금이라도 보탠다는 심정으로 해보자’라고 말하고 있다. 다들 의지가 있고 그래서 아직 희망은 분명히 있다.

간부를 내는 것은 모든 도연맹의 어려움 아닌가 싶다. 조직 강화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기본이 되는 조직 단위가 튼튼해야 전체 조직이 건강하고 잘 나간다. 가장 기본 조직이 면지회지만, 농촌 고령화·인구 감소로 젊은이들이 없다. 농민회 초창기만 해도 마을 분회가 많이 조직됐는데 지금은 마을 분회는 생각하기 힘들다. 이제 면지회를 기초 단위로 정기적으로 모이면 좀 더 큰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제 기본 단위가 군이 될 수도 있다. 군농민회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끊임없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깃발을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깃발 아래 단 한 명만 남더라도 소중하다. 30년 이상 투쟁하며 지켜온 농민들의 깃발이다. 숱한 역사를 함께 써왔고, 지금도 농민회가 우리 농업의 방향성을 나름대로 쥐고 있다고 본다. 단지 사람 수가 아닌 깃발 자체가 갖는 상징성과 가치, 힘이 있다.

농민회 동력이 많이 떨어지는 건 현실이다. 어떻게 다시 힘을 내겠나?

연대의 폭을 넓혀야 한다. 농민회가 좀 배타적인 면이 있다. 그동안 지역사회 운동 조직은 농민회를 빼곤 대부분 관의 도움으로 형성됐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한계가 있다고 규정하고 거리를 뒀다. 어려운 농업 현실에서 함께 농사짓는 이들이므로 기본적인 인식은 같이 갈 수 있다고 본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간부다. 간부 활동가들에 대한 양성 프로그램이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구심점이 있어야 그 역할을 해내고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 현안 가운데 중점을 둬야 할 투쟁 사업은 무엇인가?

산업단지(산단)가 매우 많고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다. 이는 단지 진천만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시·군이 산단으로 몸살을 앓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농지 전용과 폐기물이다.

산단을 조성할 때 농지를 많이 포함할수록 수용자들에겐 이익이다. 농지가 가장 싸기 때문이다. 특히 절대농지가 제일 싼데, 그 차액을 고스란히 시행사가 가져가는 셈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농지를 전용하려 한다. 농업의 미래를 봐서도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또 산단이 들어서면 반드시 폐기물 처리장이 같이 들어온다. 폐기물 처리장에서 오는 막대한 이익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매립량을 줄여서 진행하고 나중에 계획을 바꿔 매립량을 계속 늘리는 식이다. 순식간에 농촌이 폐기물 처리장이 돼버린다.

마을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21일 토지 강제수용을 결정하는 회의가 열린다. 강제수용이 결정되면 50일 이내에 법원 공탁을 통해 소유권이 이전된다. 주민이나 토지 소유주의 의사와 상관없이 소유권이 넘어가고 공사가 시작될 것이다. 물론 현재 주민들이 살고 있어 함부로 철거는 못 하겠지만 시간문제다. 끝까지 버티고 싸울 생각이다.

시행사에서 내놓은 대책은 뭔가?

보상하고 마을도 만들어 이주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마을과는 전혀 다르다. 마을 공동체를 이뤄 평생을 살아왔고, 더군다나 지금 우리 동네는 최고령자가 96세이고 대부분 80세가 넘었다. 공사 기간 나가 살아야 하는 2~3년 동안 돌아오지 못하는 분들도 생겨날 거다. 어르신들은 특히 고향에 대한 애착이 엄청 강하다. 나가 살라고 하는 건 어르신들에겐 큰 부담이고 충격이다.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문제 같다.

오랜 삶의 터전을 함부로 훼손하고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는 행위는 매우 심각하고 용서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여기는 집 문을 열면 바로 다 뜰 아닌가. 진짜 우량 농지, 절대농지인데 농식품부가 전용 허가를 했단 말이다. 너무나 분노스럽다. 처음에는 농식품부도 절대농지 해제를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허가를 내더니 그다음부턴 완전히 모르쇠다. 가장 앞장서서 농지를 보존해야 할 당국이 나 몰라라 한다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마을 문제만 해도 그렇고 의장직까지 올해 어깨가 무겁겠지만 다짐 한 말씀 바란다.

평생 농민운동 판에서 살겠다고 감히 결심했다.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난 늘 어딜 가도 정말 하다 하다 안 되면 차선이라도 어떤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갖고 있다. 조직엔 훌륭한 사람도 많고 가능한 최선을 선택하겠지만, 차선이라 해도 역할이 있다면 하겠다는 생각이 나를 의장직으로 이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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