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20대 청년 윤일권은 30년 동안 ‘다른 길로 새지 않고’ 농민운동의 길을 달려와 어느새 외동딸을 여의는 초로에 들어섰다. 스스로는 ‘미련해서 딴생각 자체를 안 했다’지만 그의 우직한 한 길 인생은 광주·전남이라는 남도의 심장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이르렀다. 지난 14일 전남 순천시 황전면 자택에서 임기를 시작한 윤일권 의장(55)의 다짐을 들어봤다.
올해 여러 핵심 구호를 내걸었는데 다 담지 못한 농민의 목소리가 있다면?
현장에서는 현실 문제가 구호에 안 담기니 농민회가 너무 정치적인 것 아니냐고도 하는데 결국 근본 문제가 안 풀려서 그렇다. 그래서 농민기본법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추상적인 것 같지만 농촌소멸·농민 고령화와 감소 문제, 농사로는 소득이 안 된다는 것이고 가격결정권을 농민이 갖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내 고민은 농업의 근본적 가치를 농민들만 주장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거다. 쌀 투쟁도 농민회만이 아니라 식량주권의 문제로서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 농민회의 활동에 다양한 대국민 접촉 방식이 있어야 한다. 그 한 방안이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국민에게 정책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농민회의 운동 방식이 더 창의적이어야 한다는데, 무엇이 필요하겠나.
우리부터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실 농민조차도 이를 제대로 모르면 당당히 주장할 수 없다. 농업이 정말 중요하다는 인식이 대중화하면 우리 투쟁이 정서적으로도 와 닿을 것이다.
지금 농민이 220만명밖에 안 된다지만 오히려 적을수록 조직화는 더 쉽지 않겠나. 220만명의 10%만 농민회로 조직해도 확실하게 정부·지자체 교섭을 잘 해낼 수 있다. 농민회 후보도 만들어 낼 힘이 생긴다. 이런 희망을 우리 스스로 가져야 한다. 맨날 줄어든다, 위축됐다, 사양산업이라 할 게 아니라 역으로 더욱 대중적으로 가고, 조직화해야 한다. 농민운동도 재미있게 하자. 어차피 죽을 때까지 (농민운동)할 거 아닌가.
지난해 전농 창립 이래 최초로 완도군 약산면지회 창립이란 성과를 냈다. 창립도 중요하나 조직을 유지·성장시키기 위한 전략도 필요하겠다.
농민회가 안 되는 이유 하나가 농민대회, 회의 같은 때 빼곤 안 만난다는 거다. 선거철에 누구 찍으라고 하는 것 외에 일상에서 농민들과의 연대가 없다. 우리가 조직해서 한우직판장을 열었는데 일상적으로 만나고 경제적 이익도 얻으니 사람들이 열성적으로 하게 되더라. 대부분 당원이나 농민회에 가입했다. 우리 면에만 120명, 단일 단위로는 최대다. 생활에서 연대가 안 되면 농민회가 어려워진다.
이 차원에서 지금 ‘남도먹거리정책포럼’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때 시작한 지역의 먹거리 계획인데, 전남도 각계에서 20여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누리는 것은 지역 주민의 권리인데도 정부의 농산물 수입이 이 권리를 침해한다는 인식 아래, 지역 농산물을 농민-소비자-관 3주체가 함께 책임진다는 방안이다.
지금 농협 파머스마켓에도 지역 농산물은 20%뿐이다. 공판장은 더 심각하고 학교급식도 마찬가지다. 지역 농민을 3,000명 조직한다면 학교급식 등 시민이 필요한 농산물을 계획·생산하고 가격도 사전 계약할 수 있다. 이것이 먹거리 계획의 기본 틀이다.
농민회가 농민을 조직해내고 경제적으로도 책임질 수 있다면 이는 진짜 획기적인 농정이다. 그걸 계기로 지역 농민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인 농민회 조직화 계획은 무엇인가?
도연맹이 일방적으로 사업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시군농민회의 여러 성과·모범 사례를 총합해 공유하는 방식의 수련회를 계획하고 있다. 사람이 없거나 조직이 작아 못한다는 농민회들이 있지만 그렇더라도 농민회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움직여야 한다. 잘하는 지역의 사례를 듣고 시도하며 안 굴러가는 시군농민회도 활력을 찾게끔 하려 한다.
이를테면 순천시농민회는 재작년부터 시와 농민회가 비용을 반반 부담해 드론으로 논에 약을 치고 있다. 뙤약볕에 줄 끌면서 분무기로 약 치면 사람이 ‘미쳐 분다’. 이건 아니다 싶어 시에 요구했다. 농민들이 너무너무 고마워하고, 농민회에 대한 칭찬이 어마어마하다. 농민들은 ‘농민회는 맨날 정치투쟁 하고 데모만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문제로 투쟁하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말로만 대중화가 아니라 실제 농민들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곧 전주(을) 재선거다. 지난해 전농은 6.1지방선거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이번 선거는 어떤 의미가 있나.
우리 목소리를 실제로 대변하고 국회에서 법을 제정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 전주(을) 선거에서 승리해 강성희 진보당 후보가 국회에 입성하면 농민기본법을 실제 발의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언론의 집중과 함께 진보당에 대한 국민 여론도 커질 것이다. 지역 주민들도 ‘밀어줘 봐야 되지도 않네’에서 ‘되네’라고 생각할 거다. 지역은 후보가 맘에 들어도 안 될 것 같으면 잘 안 찍는다. 될 사람을 찍어주려는 심리가 강하다.
농민운동에서 광주전남의 역할이 크다. 19기 의장으로서 어떤 다짐을 하나.
사람들이 무슨 농사를 짓느냐고 많이 묻는데, 나는 농사는 부업이고 농민운동이 본업이라고 답한다. 정광훈 전 전농 의장이 간부들은 많은 걸 가지면 안 된다고 하셨다. 가진 게 많으면 욕심 때문에 혁명을 못 한다는 거다. 농민운동가는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고 빈곤하게 살라는 게 아니라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뜻에서 우리집도 농사 규모를 줄이고 있다. 농민운동가는 몸이 가벼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