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농사짓느냐고? “부업은 농사, 본업은 농민운동”

인터뷰 l 윤일권 전농 광주전남연맹 19기 의장

  • 입력 2023.03.19 18:00
  • 수정 2023.03.23 08:58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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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20대 청년 윤일권은 30년 동안 ‘다른 길로 새지 않고’ 농민운동의 길을 달려와 어느새 외동딸을 여의는 초로에 들어섰다. 스스로는 ‘미련해서 딴생각 자체를 안 했다’지만 그의 우직한 한 길 인생은 광주·전남이라는 남도의 심장을 책임지는 자리까지 이르렀다. 지난 14일 전남 순천시 황전면 자택에서 임기를 시작한 윤일권 의장(55)의 다짐을 들어봤다.

윤일권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의장. 한승호 기자
윤일권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의장. 한승호 기자

올해 여러 핵심 구호를 내걸었는데 다 담지 못한 농민의 목소리가 있다면?

현장에서는 현실 문제가 구호에 안 담기니 농민회가 너무 정치적인 것 아니냐고도 하는데 결국 근본 문제가 안 풀려서 그렇다. 그래서 농민기본법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추상적인 것 같지만 농촌소멸·농민 고령화와 감소 문제, 농사로는 소득이 안 된다는 것이고 가격결정권을 농민이 갖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내 고민은 농업의 근본적 가치를 농민들만 주장할 게 아니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거다. 쌀 투쟁도 농민회만이 아니라 식량주권의 문제로서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 농민회의 활동에 다양한 대국민 접촉 방식이 있어야 한다. 그 한 방안이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국민에게 정책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농민회의 운동 방식이 더 창의적이어야 한다는데, 무엇이 필요하겠나.

우리부터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사실 농민조차도 이를 제대로 모르면 당당히 주장할 수 없다. 농업이 정말 중요하다는 인식이 대중화하면 우리 투쟁이 정서적으로도 와 닿을 것이다.

지금 농민이 220만명밖에 안 된다지만 오히려 적을수록 조직화는 더 쉽지 않겠나. 220만명의 10%만 농민회로 조직해도 확실하게 정부·지자체 교섭을 잘 해낼 수 있다. 농민회 후보도 만들어 낼 힘이 생긴다. 이런 희망을 우리 스스로 가져야 한다. 맨날 줄어든다, 위축됐다, 사양산업이라 할 게 아니라 역으로 더욱 대중적으로 가고, 조직화해야 한다. 농민운동도 재미있게 하자. 어차피 죽을 때까지 (농민운동)할 거 아닌가.

 

지난해 전농 창립 이래 최초로 완도군 약산면지회 창립이란 성과를 냈다. 창립도 중요하나 조직을 유지·성장시키기 위한 전략도 필요하겠다.

농민회가 안 되는 이유 하나가 농민대회, 회의 같은 때 빼곤 안 만난다는 거다. 선거철에 누구 찍으라고 하는 것 외에 일상에서 농민들과의 연대가 없다. 우리가 조직해서 한우직판장을 열었는데 일상적으로 만나고 경제적 이익도 얻으니 사람들이 열성적으로 하게 되더라. 대부분 당원이나 농민회에 가입했다. 우리 면에만 120명, 단일 단위로는 최대다. 생활에서 연대가 안 되면 농민회가 어려워진다.

이 차원에서 지금 ‘남도먹거리정책포럼’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때 시작한 지역의 먹거리 계획인데, 전남도 각계에서 20여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누리는 것은 지역 주민의 권리인데도 정부의 농산물 수입이 이 권리를 침해한다는 인식 아래, 지역 농산물을 농민-소비자-관 3주체가 함께 책임진다는 방안이다.

지금 농협 파머스마켓에도 지역 농산물은 20%뿐이다. 공판장은 더 심각하고 학교급식도 마찬가지다. 지역 농민을 3,000명 조직한다면 학교급식 등 시민이 필요한 농산물을 계획·생산하고 가격도 사전 계약할 수 있다. 이것이 먹거리 계획의 기본 틀이다.

농민회가 농민을 조직해내고 경제적으로도 책임질 수 있다면 이는 진짜 획기적인 농정이다. 그걸 계기로 지역 농민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인 농민회 조직화 계획은 무엇인가?

도연맹이 일방적으로 사업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시군농민회의 여러 성과·모범 사례를 총합해 공유하는 방식의 수련회를 계획하고 있다. 사람이 없거나 조직이 작아 못한다는 농민회들이 있지만 그렇더라도 농민회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움직여야 한다. 잘하는 지역의 사례를 듣고 시도하며 안 굴러가는 시군농민회도 활력을 찾게끔 하려 한다.

이를테면 순천시농민회는 재작년부터 시와 농민회가 비용을 반반 부담해 드론으로 논에 약을 치고 있다. 뙤약볕에 줄 끌면서 분무기로 약 치면 사람이 ‘미쳐 분다’. 이건 아니다 싶어 시에 요구했다. 농민들이 너무너무 고마워하고, 농민회에 대한 칭찬이 어마어마하다. 농민들은 ‘농민회는 맨날 정치투쟁 하고 데모만 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문제로 투쟁하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말로만 대중화가 아니라 실제 농민들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곧 전주(을) 재선거다. 지난해 전농은 6.1지방선거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이번 선거는 어떤 의미가 있나.

우리 목소리를 실제로 대변하고 국회에서 법을 제정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번 전주(을) 선거에서 승리해 강성희 진보당 후보가 국회에 입성하면 농민기본법을 실제 발의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언론의 집중과 함께 진보당에 대한 국민 여론도 커질 것이다. 지역 주민들도 ‘밀어줘 봐야 되지도 않네’에서 ‘되네’라고 생각할 거다. 지역은 후보가 맘에 들어도 안 될 것 같으면 잘 안 찍는다. 될 사람을 찍어주려는 심리가 강하다.

농민운동에서 광주전남의 역할이 크다. 19기 의장으로서 어떤 다짐을 하나.

사람들이 무슨 농사를 짓느냐고 많이 묻는데, 나는 농사는 부업이고 농민운동이 본업이라고 답한다. 정광훈 전 전농 의장이 간부들은 많은 걸 가지면 안 된다고 하셨다. 가진 게 많으면 욕심 때문에 혁명을 못 한다는 거다. 농민운동가는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하고 빈곤하게 살라는 게 아니라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뜻에서 우리집도 농사 규모를 줄이고 있다. 농민운동가는 몸이 가벼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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