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연탄⑤ 뽑기, 오징어구이 그리고 연탄재 떼 내는 법

  • 입력 2023.03.12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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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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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칸방에 세든 주부가 연탄불을 문제없이 잘 관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면, 이미 살림살이에 대한 지혜의 반은 터득한 셈이다. 그 방면에 이력이 붙은 우리의 어머니들은 연탄의 연소상태를 잘 조절해서 아침 녘에 이르러 가장 강한 불길이 일게 했다. 그래야 때맞춰 아침밥을 지어서 출근하는 남편과 학교 가는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 너 도시락 안 싸 왔어?

-응. 아침에 연탄불이 꺼져서 못 싸 왔어. 대신에 엄마가 빵 사 먹으라고 돈 주셨거든.

-와, 좋겠다. 내 밥 나눠 먹고 같이 사 먹으러 가자.

점심시간에 밥을 굶고 있는 아이들이 도시락을 안 싸 온 이유로 가장 흔하게 드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연탄불이 꺼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더러는 연탄불의 상태가 안 좋아서 설익은 밥을 먹고 등교나 출근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조금쯤 더 흘러 등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석유 화로(대체로 일본어인 ‘곤로’라고 불렀다)의 보급이 일반화하면서 주부들은 ‘연탄불 관리를 잘 못 하여 아이들의 점심을 굶게 만들면 어떡하나’ 하는 조바심은 내려놓을 수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곤로의 역할은 그뿐이었다.

“아침에 연탄 화덕의 불구멍을 헝겊으로 적당히 막으면서 그저 죽지 않고 살아만 있어다오, 그렇게 해놓고 출근을 한단 말예요. 그 미미한 온기가 방구들에 기별이나 가겠어요? 한겨울의 경우 퇴근해 돌아오면 방바닥이 얼음장이지요. 그래서 한 번은 남편이, 탄불 타오를 때까지 석유 곤로라도 피우자 해서 방안으로 들여놨는데…어떻게 됐겠어요. 방안은 온통 석유 냄새와 그을음으로 가득해서 기침을 콜록거리고, 천장엔 결로(結露) 현상이 일어나서 이불 위로 물방울은 뚝뚝 떨어지지….”

박영숙 주부의 경험담이다.

석유 곤로가 취사용 에너지로 이용되면서 연탄은 난방용으로 쓰였다고 했지만, 부분적으로만 그러했다. 식당에서 뚝배기에 찌개를 끓이거나 고기를 굽는 일은 연탄불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탄불에 구운 오징어 안주에 소주 한 잔’은 고단한 삶에 지친 서민들에게는 빼놓아서는 안 될 위안이었다. 어른들뿐이겠는가.

-영식아, 우리 엄마 외삼촌네 김치 갖다 주러 갔으니까 저녁이나 돼야 오실 거거든. 우리 그거 만들어 먹을래? 내가 찬장에서 국자 꺼내올 테니까 저기 가서 설탕 좀 갖고 와봐.

-응, 설탕 여기 있어. 그런데 설탕 말고 그 뭣이더라, 맞아, 소다도 있어야 하는데?

-아, 그렇지. 내가 구멍가게에 뛰어가서 소다 사 올 테니까 잠깐 기다려.

중년 여성들이 연탄불과 관련해서 공통으로 떠올리는 추억이 바로 어린 시절 ‘뽑기’를 만들어 먹던 기억이다. 그들 대부분은 또, 그걸 만들어 먹다가 어머니한테 들켜서 혼났던 경험까지 공유하고 있었다. 석쇠를 올려놓고 구워 먹었던 가래떡 맛 또한 일품이었다.

연탄불은 피우고 유지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타고 난 잔해를 처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붙어 있는 두 덩어리의 탄을 대문 밖으로 들고나와서는, 타버린 아래쪽 재를 떼어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서민들이 거주하는 골목길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보통은 그 사이를 부삽으로 푹 찌르면 떨어지는데 어떤 놈들은 워낙 단단히 엉겨 붙어서 식칼까지 동원해서 겨우 떼어냈어요. 빈 맥주병으로 딱 때리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재도 잘 떨어지지만, 함부로 쓸 방법은 아녀요. 자칫 불붙은 연탄이 반토막 나버리는 수가 있거든요.”

연탄을 갈 때 그 사이에 모래를 뿌려두면 타고나서도 쉽게 떨어지는데 박영숙 주부는 그 비법을, 연탄으로부터 해방되고 난 뒤에야 알았다면서 씁쓸해했다.

환경미화원들은 연탄재를 치워준다는 명목으로, 법에도 없는 쓰레기 수거비를 요구했다. 아예 세금 걷듯이 호별 방문을 하면서 영수증도 없이 가욋돈을 징수해 갔다. 그래서 눈이 내려 길이 미끄러워지기라도 하면, 주부들은 행인들의 미끄럼을 방지해준다는 핑계로, 언덕바지 비탈길에다 연탄재를 힘껏 동댕이쳤다. 스트레스 푸는 데에는 그만한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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