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주민자치 시대와 마을 ②

  • 입력 2023.03.12 18:00
  • 기자명 김효진(전북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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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전북 순창)
김효진(전북 순창)

주민자치 시대를 열자면 현재 마을에 놓여 있는 녹록지 않은 상황을 냉정한 눈으로 보되,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된 마을자치의 경험과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고, 앞선 글에서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마을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선 어떠한 조건을 갖춰야 할까.

우선 크든 작든 마을의 규모와 상관없이, 마을 내 민주주의 운영 원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마을별 편차가 심할뿐더러 전국의 수많은 마을을 직접 들여다보지 못해 확증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마을 대소사를 결정할 때 소수 몇몇 주민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꽤 있다. 또한 여성 노인과 아이들의 참여를 강제하지 않아 남성 주민들 중심으로 마을총회를 여는 곳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한 마을에선 연말 이장 선거에 주민 두 명이 입후보하여 경선을 치르는데, 주민의 투표를 거치지 않고 동전 던지기를 하여 마을 이장을 뽑은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한다. 마을구성원 스스로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책임과 권한을 다하고자 한다면 회의 참석은 필수다. 매끄럽지 않고 서툴지라도, 마을 회의는 마을 민주주의의 시작점이자 마을자치의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주적 운영만으로 마을자치를 펼칠 수는 없다. 자치는 구체적인 사업과 활동을 통해 구현되는 가치이므로, 자치계획 실행을 위한 예산은 필수다. 자산과 기금이 꽤 조성된 마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마을이 대다수다. 지자체별로 형식적으로나마 진행 중인 주민참여 예산을 대폭 늘려 마을자치회에 배정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물론 적확하고 투명한 집행을 전제로 말이다.

일부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주민세 환원 사업’도 좋은 본보기다. 주민세가 재산이나 소득에 관계없이 해당 지자체의 구성원으로서 부담하는 회비적 성격의 조세이니만큼 마을에 환원, 배정하여 실행 예산으로 활용한다면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또한 마을숙원사업이니 소규모 지역개발사업이니 하며 마을에 지원되는 각종 사업비를 ‘꼬리표 없이’ 마을에 배정하여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과 활동에 쓴다면, 마을자치라는 돛단배에 순풍이 부는 격이라 할 만하다. 다만, 시·군, 읍·면 주민자치회가 구성된 지역이라면 마을별 자치 실행계획을 검토하여 예산을 편성하겠지만, 이제 막 주민(마을)자치회를 검토하는 지자체라면 자치 역량이 있는 마을부터 독립적인 마을 예산을 지원하여 모범을 창출해나갈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행정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그 핵심은 마을 대표자인 이장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데 있다. 읍·면 이장회의는 대체로 읍·면장과 총무계, 복지계, 산업계의 지시사항 전달을 축으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장은 여전히 행정 말단의 집행단위로서, ‘하부조직’의 지위에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우선 상위법인 지방자치법에 이장의 임명 근거를 명확히 하고, 지자체의 조례에 선임과 해임, 업무와 수당 등을 명문화하여 이장의 법적 지위와 권한, 그리고 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이처럼 이장이 행정의 안내자 역할을 벗어나 대내외적으로 마을자치 대표자로서의 지위를 가지려면 행정공무원의 역할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농업법인과 대농 중심으로 집중되는 각종 농업보조금 제도를 손봐 전체 농민들에게 직접지원 형태로 확대 전환한다면, 농업분야 보조사업 전담 부서가 돼버린 전국의 읍·면사무소 산업계 직원들은 그야말로 마을(자치) 행정지원에 진력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장 역시 상당한 행정업무 부담을 덜어내고 마을자치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물론 농림부 관료부터 현장의 소수 대농들까지 농업보조금 사업으로 자리 보전하고 생존하는 자들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해결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오늘도 한국정치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처절하게 목도하고 있다.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여 민의를 폭넓게 반영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요구는 대세가 되었다. 마을에서부터 시작하자. 그래야 나라가 바뀐다. 마을은 국가공동체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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