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오르고 비 줄었는데 … 꿀벌 소멸이 방제 탓?

농가 방제에 초점 맞춘 정부 대책 나오자 양봉현장 ‘분노’
그린피스 “기후가 응애 발생에 미치는 영향 이미 입증돼”

  • 입력 2023.03.09 20:28
  • 수정 2023.03.10 09:3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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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방창석씨가 응애 피해가 발생해 소각하려 쌓아둔 소비 가운데 한 장을 꺼내보이고 있다.

 

월동꿀벌 소멸 피해가 수년째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피해 규모는 지난해보다도 더 커 월동 이전인 지난해 가을 동안 이미 50만 봉군(약 100억마리) 이상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꿀벌을 죽인 주범이 응애라는 덴 누구도 이견이 없으나, 그 응애의 발생원인을 농가의 방제에서 찾은 정부 발표를 두고 거센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서울사무소는 지난 8일 보도자료를 내고 농식품부의 발표내용을 전면 반박했다. 그린피스는 “응애 피해 규모의 증가는 기후변화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라며 “작년 남부 지방은 역대 최장의 가뭄을 기록했으며, 연평균 기온은 12.9도로 평년보다 0.4도 높아 기후변화로 응애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린피스는 국제학술지 ‘Nature Scientific Report’를 통해 지난 2021년 이미 공개된 영국 뉴캐슬대 연구팀의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연구진은 영국 동식물보건국이 지난 2006년부터 10년간 30만회가 넘는 양봉장 방문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근거로 6종의 꿀벌질병 유병률이 기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분석했다. 그 가운데 응애(Varroa mite)의 유병률은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증가하고, 반면 강우와 바람이 잦을수록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상청에 따르면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평년 대비 0.4℃가 높았으며, 특히 응애 발생이 본격화되는 7월의 평균기온은 1.3℃나 높았다. 또한 평균 강수량은 1,150.4mm로 평년 대비 86.7%에 그쳤는데, 특히 피해가 극심했던 광주·전남 지역의 지난해 평균 강수량은 평년의 60%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린피스는 이외에도 ‘지난해 꿀 생산량이 평년보다 15% 높으므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적다’, ‘한국의 양봉 사육밀도가 ㎢당 21.8봉군으로 미국의 80배 수준이니 생태계 영향이 적다’는 의견들에도 일일이 반박했다. 그린피스는 “꿀 생산량은 양봉산업의 지표일 뿐 종 다양성 지수 등 생태계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로 보기 어렵기에, 꿀 생산량이 높다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분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라고 밝혔다. 

또 “밀원수의 양을 가늠할 수 있는 천연 꿀 생산량으로 비교하면 미국은 한국의 2~3배 수준으로, 실제로 한국의 밀원수는 지난 50여 년간 70%나 줄어들었다”라며 “즉 한국의 양봉 사육밀도가 전 세계 1위란 것은, 벌들이 좁은 땅 안에서 줄어드는 먹이를 두고 벌들이 경쟁을 한다는 사실을 가리키며 한국의 벌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상황임을 의미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린피스는 미국과 유럽 등의 사례를 참고해 다부처로 구성된 국무총리 산하 ‘꿀벌살리기위원회’의 설립을 제안하는 공문을 농식품부에 보냈으나 회신이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현장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양봉농가 방창석씨(광주광역시)는 지난해 방제의 기억을 모두 쏟아내며 올해 피해를 농가 잘못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주장을 분명히 했다. 정부의 설명대로 방제가 듣지 않은 건 맞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응애에 대처할 수 없었던 상황을 적절한 지도나 정책도 없었던 현실 속에서 농가의 탓으로만 돌리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방씨 양봉장에서 응애 피해를 받아 폐사한 꿀벌들.

방씨는 “정부 발표에서 농가들이 수확하느라 적기 방제에 소홀했다고 하는데, 농가는 벌 개체 수를 늘리는 육종뿐만 아니라 소득을 위한 생산도 고려해 둘을 병행해야만 한다. 가뜩이나 연이은 흉작으로 고생했던 최근 상황 때문에 농가들은 간만에 작황이 좋았던 작년에 소득을 만회해야 한다는 압박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확실한 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응애가 늘어났다는 것, 농가는 늘 해오던 방식으로 영농했으며 써오던 약을 썼다는 거다. 사육의 ‘룰’이 완전히 틀어져 버린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사육방식을 ‘미흡한 적기 방제’와 ‘과잉 방제’로 칭하며 이제 와 잘못된 사육이라고 말하는 건 터무니 없다는 얘기다.

방씨 양봉장의 경우 월동이 끝나면 통상 100군 정도의 벌을 보유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래 누적 150군을 잃은 탓에 올해 봄을 앞두고 60군의 벌통을 외부에서 새로 주문했다. 입식 비용은 지난해 시세도 일찌감치 갱신해 군당 35만원까지 오른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겨우내 보관한 빈 벌통들마저 나방소충에 점령당해 피해 누적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방씨는 “닭만 해도 조류인플루엔자가 퍼지면 국가가 나서서 보상하고 도태시키지 않나”라며 “아무리 대가축이니 소가축이니 하고 나눈다지만 농가 한둘의 문제가 아닌데 이렇게 나몰라라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피해의 복구를 위해 농가들이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은 기시행 중이었던 ‘농축산경영자금(이율 2.5%, 최대 1,000만원 대출)’과 지자체의 단독 사업 말고는 사실상 없다.

한편 범위와 강도가 분명한 피해가 매년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양봉농가들은 권익 보호를 위해 뚜렷한 대오를 형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남겼다.

정부 대책 발표 이후 대표 생산자단체인 한국양봉협회는 지난 9일 세종시 농식품부 앞에서 ‘전국 양봉인 총궐기’를 열고 △꿀벌 폐사 보상금 지급 및 각종 경영자금 지원 △응애·등검은말벌에 의한 피해 농업재해 인정 및 농업재해보험 상품 개발 추진 △꿀벌 병해충 방제약제 정부지원 예산 대폭 증액 △농림축산식품부 내 양봉전담부서 신설 △꿀벌의 공익적 가치 인정 및 직불금 지급 등 농가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 총궐기에 대해 시기를 한참 놓친 게 아니냐는 내부 불만도 이어지고 있다.

응애 피해에 따른 농가 의견을 수렴, 대책 발표 이전에 농식품부를 압박할 것을 결정해놓고도 결국 실천하지 못했던 일련의 행보 때문이다. 이 집회는 본래 지난 2월 14일 개최가 예정돼 있었으나 이사회가 결정을 뒤집었고, 농가들은 발표내용을 기다리는 것밖엔 도리가 없었다. 발표 전 농식품부 앞에서 상여를 메고 행진하며 양봉농가의 요구사항을 외친 건 양봉협회가 공언한 5,000명의 양봉인이 아닌, (사)양봉관리사협회 소속의 소수 농가뿐이었다.

집회에 참가한 양봉협회의 한 지역 지부장은 “농가들이 대체 누구를 대변하는 거냐고 소리치니 안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이제 와(9일) 떠밀려서 어쩔 수 없이 집회를 여는 느낌”이라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식의 회원들 불신이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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