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가 정말로 한목소리를 냈더라면”

  • 입력 2023.03.05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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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농산물 가격 불안정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는 농업계의 오랜 숙제다. 최근 물가급등에 따른 소비자 부담과 맞물려 농산물값 자체가 공격을 받으며 유통의 문제도 꽤나 화두에 오르긴 했지만, 농가들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여론의 질타는 여전히 자주 일어난다. 떨어진 산지 가격이 농가를 강타하면 무작정 심고 길러서 그런 것이고, 가격이 높아도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면 생산비 절감 노력이 없어서 그렇다고들 한다.

생산효율의 증대와 비용감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급조절의 책임조차 농가들이 짊어지고 비판받는 풍경은 때때로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수입 농축산물이 우리나라에 물밀 듯 들어오는 현실은 이미 모두의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린 듯(혹은 모르는 체하는 듯)한 시선이 팽배하며, 쌀·소고기 등 논란이 크게 일었던 일부 품목에선 수급조절의 책임이 있는 정부조차 합세해 농민 탓을 하기에 바빴다.

농산물·축산물 할 것 없이 나날이 내려가는 자급률 실정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품목별로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과반이 넘는 시장점유율을 수입산에 내줬으며 이 비율은 통상정책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이는 표면적으로 자급률이 가장 높은 쌀 역시 예외가 아닌 문제로, 쌀 소비량은 나날이 줄어드는 데 반해 저율관세의무수입물량(TRQ)은 8년 전에 정해진 40만9,000톤이 그대로 들어오고 있다.

그런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했을 때 수급조절에 있어 일말의 책임조차 농민들에게 전가하는 행위는, 수많은 점조직으로 전국에 흩어져 있는 농업 생산자들이 국내 제반상황은 물론이고 수입산 농산물의 공급량까지 고려해 생산을 조절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신기한 풍경은 날이 갈수록 더욱 익숙해지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지난해 농민들의 대응이었다. 최근 곳곳에서 열리는 각종 생산자단체의 정기총회나 이사회를 가 보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대표자들의 하소연과 아쉬움이 있다. ‘우리가 정말로 한목소리를 내 대응했더라면 이런 정책, 대책을 강행할 수 있겠나.’ 각종 이권에 휘둘려 대표단체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거나, 무관심 속 투쟁이 힘이 잃었다는 설명들이다. 줄곧 유지했던 주장을 헌신짝처럼 내버려 아예 내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생산자를 지키던 각종 안전장치가 사라지고, 무관세 축산물이 쏟아져도 우리 농가들은 ‘수입이 문제다’, ‘농정이 문제다’라고 한목소리로 얘기하지 못했다. 농민들부터 스스로 자기 권익을 앞장서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이것을 지켜주겠는가. 농민들이 농업 농촌 전체의 앞날과 이익에 몰두해야 돕는 사람들도 온전히 힘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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