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연탄④ 퇴근해 돌아오니 연탄불이 꺼졌더라

  • 입력 2023.03.05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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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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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젊은 부부가 단칸 셋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신혼부부는 단칸방을 세 얻어서 첫 살림을 시작하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다. 또한 첫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맞벌이를 하는 것 또한 도회지 신혼부부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대체로 연탄불 관리하는 요령쯤은 이미 친정이나 본가에서 경험을 쌓은 뒤에 결혼을 하지만, 평소 집안 살림을 부모에게만 전적으로 의지했던 선남선녀가 덜컥 신혼살림을 차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경우 꽤 오랫동안 연탄 아궁이 앞에서 허둥대는 세월을 보내야 한다.

퇴근길에 만나서 함께 집에 들어온 신혼부부가, 윗옷도 벗기 전에 부엌으로 내닫는다. 아궁이의 두꺼비 집을 젖히고 연탄불의 안부부터 확인해야 한다. 불이 탈 없이 잘 살아 있다면야 다행이겠지만….

—아뿔싸, 탄불이 꺼져버렸네.

이렇게 되면 젊은 부부지간에 콩이니 팥이니 네 탓이니 내 탓이니 말다툼이 벌어진다.

—미치겠네. 아침에 주인집에서 밑불 활활 붙은 탄 한 장 얻어다가 갈아놓고 출근했는데.

—그러면 뭘 해, 꺼져버렸는걸. 아궁이 덮고 나올 때 공기구멍을 헝겊으로 꽉 막아버린 거야?

—당연하지. 지난번엔 열어놓고 출근했었는데, 다 타고 재만 남아 있었으니까.

—아이고, 이 멍충이. 꽉 막지는 말고 공기구멍을 약간은 열어뒀어야지. 오늘 밤 영하 16℃라는데 냉골에서 같이 얼어 죽을 거야? 빨리 가서 번개탄 사다가 불 좀 피워봐.

공기구멍을 틀어막아 불을 꺼뜨린 ‘멍충이’가 남편일 수도 있고 여편일 수도 있고, 혹은 둘 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기구멍의 마개만 조절해서는 안 될 경우도 있다. 짧은 시간에 강한 화력을 요할 때에는 불이 붙어 있는 아래쪽의 연탄과 새 연탄의 구멍을 일치시켜야 활활 타오르지만, 탄불이 진득하게 오래 살아 있게 하려면 위아래 연탄의 구멍을 약간씩 어긋나게 맞추어서 연소를 지연시켜야 한다.

보고 들은 것은 있어서 일단 번개탄을 사오긴 했는데 이번엔 또 그 사용법을 모른다.

—비닐 포장은 뜯어냈는데…라이터 불을 어디다 붙이지? 잘 안 붙는데?

—모래알 같은 것 묻어있는 그쪽에다 붙여봐. 에이, 꺼졌잖아. 신문지를 찢어서 불을 붙여.

—붙었다. 참, 엊저녁에 저 골목 앞집 남자는 연탄집게로 번개탄을 집어서 막 돌리던데?

—나도 연속극에서 봤어. 불놀이하듯이 빙빙 돌리면 불이 활활 잘 붙더라구. 한 번 돌려봐.

남자가 번개탄을 집게로 집고서 마당으로 나와서는 빙빙 돌린다. 그런데 너무 세게 돌리다가 저만치 수돗가에 내동댕이치고 만다. 1981년도에 결혼을 했다는 박영숙 씨의 경우가 그러했다.

“어휴, 힘들었어요. 연탄불은 난방을 위해서만 피우는 게 아니잖아요. 그 불에다 밥도 해야 한다구요. 냉골에서 떨며 자거나, 아침에 선밥 먹고 출근하기가 다반사고…. 우리 부부는 약속이나 한 듯이, 연탄불 피우고 관리하는 걸 통 모르는 상태에서 셋방살이를 시작했거든요. 한 번은 번개탄에다 간신히 불을 붙여서 연탄 아궁이에 넣는 데까지는 했는데…주인집 할머니가 마실 갔다 와서 아궁이를 열어보시더니 혀를 끌끌 차시더라고요.”

—번개탄을 밑에 놔야지 새 연탄 꼭대기에다 올려놓다니. 아까운 번개탄 하나만 다 태워버렸네. 하기야 한 번도 안 해보고 시집 장가부터 갔으니 알 턱이 있나.

—그러게요, 결혼식 주례선생님도 연탄불 피우는 법은 안 가르쳐 주시더라고요.

—새댁, 잠깐 기다려. 내가 불붙어 있는 연탄 한 장 갖다 줄 테니까.

그런 경우 주인집 할머니가 건네주는 벌건 밑불 하나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더러는 절반이 훨씬 더 타버린 밑불을, 새 연탄 한 장과 맞바꾸기도 했다. 당시 규모가 큰 도회지의 시장에서는 연탄 수십 장을 미리 피워놓고 있다가, 새벽에 장사를 하러 나오는 상인들에게 꽤 비싼 값을 받고 팔아서 이문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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