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RPC, 도정수율 조작해서 남은 쌀 빼돌렸나”

영암 통합RPC 도정수율 조작 의혹 … 남은 쌀 행방 묘연

유량계엔 74%, 전산엔 71% … 돈으론 17억원 이상 차이

농협 자체 진상규명 의지 없어 … 농민들 경찰고발 준비

  • 입력 2023.03.05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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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전남 영암군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통합RPC)의 도정수율 조작 의혹이 석 달째 ‘의혹’ 상태로 제자리걸음이다. 농협 측은 사실상 의혹을 무마하려는 낌새고, 답답한 농민들이 직접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영암 통합RPC 신임 대표가 부임한 이후, 통합RPC 내부에서 전임 대표 시절의 도정수율 조작 의혹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통합RPC에 참여하는 4개 농협이 합동감사를 진행했고 실제로 조작을 의심할 만한 정황이 확인됐다. 유량계를 통해 확인되는 도정수율과 전산에 입력하는 도정수율에 큰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RPC 유량계는 공정상의 감모율, 포장 덤과 반품 리사이클 등 다양한 오차요인으로 인해 100% 신뢰하기 어렵다. 그래서 농협 통합RPC는 주기적으로 도정수율을 표본실측하고 이를 기준으로 도정실적을 농협중앙회 전산시스템에 공식 등록한다. 유량계와 전산등록 수치 사이에 어느 정도의 차이는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차이가 비정상적이라는 데 있다. 전산에 등록된 영암 통합RPC의 도정수율은 2019년산 70.8%, 2020년산 70.3%, 2021년산 71%다. 하지만 유량계 수치를 기반으로 계산한 도정수율은 각각 73.2%, 73.3%, 74.2%다. 3%의 차이. 얼핏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3년 동안 원료곡 기준 1,170톤, 액수로는 17억5,500만원(40kg 6만원 적용)의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문제 제기에 앞장서고 있는 영암군농민회는 “농협이 공개한 3년치의 자료만 분석한 것일뿐, 이전부터 계산하면 훨씬 더 많은 물량이 빈다”며 “유량계의 모든 변수를 감안해도 1% 안팎의 차이는 이해하겠지만 3%는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영암 통합RPC 입구에 ‘도정수율 조작’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영암군농민회는 통합RPC 수뇌부 인사 중 최소 1명 이상이 범죄에 가담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임순만 기자
영암 통합RPC 입구에 ‘도정수율 조작’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영암군농민회는 통합RPC 수뇌부 인사 중 최소 1명 이상이 범죄에 가담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임순만 기자

의심에 쐐기를 박은 건 통합RPC 대표가 바뀐 뒤의 변화다. 신임 대표가 부임한 지난해부터 영암 통합RPC는 논란을 거울삼아 도정수율 실측에 철저를 기했고, 그 결과 현재 전산에 등록되고 있는 도정수율은 74% 수준이다. 유량계와의 격차 3%가 일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영암 통합RPC의 도정수율 실측에 그동안 심각한 하자가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만약 누군가의 고의적인 수율 조작이라면 처음부터 횡령이나 유용을 목적으로 행한 중대 범죄행위가 된다. 다행히 고의성이 없는 업무과실이라면 책임자 문책을 진행해야 하겠지만, 여기도 범죄의 여지는 남는다. 수율 착오가 발생했으니 당연히 RPC에 남는 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의도치 않게 발생한 잉여 쌀을 역시 누군가가 횡령·유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업무과실에 대해서도 조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민들이 통합RPC 참여 조합장들에게 경찰 고발을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지만 조합장들은 “증거가 없다”며 고발을 주저하고 있고, 농협중앙회는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도정수율 문제에 대한 감사 자체를 회피했다. 양쪽 모두 사실상 진상규명에 나설 의지가 없는 모습이다.

농협 조직을 통한 문제해결에 진전이 보이지 않자 결국은 영암군농민회가 직접 고발을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기적으로는 ‘농협맨’으로만 구성돼 있는 통합RPC 이·감사에 외부인사를 참여시켜 자정 능력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권혁주 영암군농민회 사무국장은 “지난 세월 동안 통합RPC의 원료곡 관리가 엉망진창이었다는 게 밝혀졌다. 도정수율이 어긋나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우리 RPC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했을 거라 생각되지 않는다. 다른 지역 통합RPC들도 얼마든지 허술하게 관리될 수 있는 구조기 때문에, 모든 농민들이 자기 지역 RPC를 관심 있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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