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그렇게 다시 농부로 살기로 했다

  • 입력 2023.03.05 18:00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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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강원 홍천)

2017년 귀농을 결심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교육원에서, 농업대학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이론을 배우고, 집 앞 텃밭에서 시작해서 300평에서 2,000평으로 조금씩 임대규모를 늘려 실전 농부가 되었다.

2018년 청년창업농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3년간 소정의 영농비를 지원받았다. 그 덕에 다양한 단체활동도 경험해보고, 교육도 받고, 돈 안되는(?) 토종 작물들도 다품종소량생산 해보았다. 그리고 나름의 가내수공업으로 꽃차, 과일청, 곡물간식류 등을 즉석 제조 가공하여 인터넷에서도 판매했다. 1차 생산부터 6차 가공 및 판매까지 귀농한 청년들이 하는 대부분의 시도는 다 해본 듯싶다.

귀농 3년차 되던 해부터 찰옥수수를 주작목으로 정하고 영농정착구축지원 사업을 받았다. 냉동창고를 짓고, 판매장을 짓고, 진공포장기를 샀다. 내 옥수수만으로는 부족해서 마을 어르신들의 옥수수까지 수매해서 선별·가공·포장해 판매했다. 첫해 판매실적은 마이너스 80만원. 하지만 재고관리와 수매 및 선별방법, 그리고 거래팁 등을 몸으로 배웠고, 옥수수는 함부로 밭떼기로 사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배움의 값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 해에는 옥수수를 등급별로 선별·소량판매해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보는 시도를 해서 180만원의 이윤을 남겼다. 그렇게 옥수수를 심어 키우고 직접 판매한 지 6년차가 되었다.

자신감이 생겨서일까, 덜컥 논농사에 도전했다. 첫해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우렁이 농법으로 논농사를 다섯 마지기 지어 10kg짜리 130포를 수확했다. 첫 쌀을 한 포당 3만8,000원씩 기분 좋게 한 달 만에 완판하고는 의기양양했었다. 임대료에 콤바인값, 이앙기값, 모값에 도정비와 퇴비값을 제하고 나면 당연히 남는 건 없는 소농이지만, 건강하고 맛있는 쌀을 가득 쌓아놨을 때의 기분만으로도 이제야 진짜 농부가 된 것 같았다.

그때 지인에게 앞으로는 소득이 안되더라도 쌀농사는 꼭 지을 거라고 기분 좋게 통화를 했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다음해인 작년 겨울, 그 사람을 붙잡고 탈농하겠다고, 농사 따윈 안 지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엉엉 울었다. 작년에는 퇴비값도, 비료값도, 인건비도, 유류비도 모두 올랐다. 그리고 옥수수가 한창 자라야 할 여름과 벼가 익어야 할 가을까지 지독하게도 비가 많이 왔다. 사람 구해서 제초를 해가며 짓던 옥수수밭은 객토한 흙이 물꼬가 제대로 트이지 않아 습해를 입고 수확량이 반의 반도 되지 않았다. 다른 밭도 일조량이 부족한 탓에 깜부기병 피해가 있어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옥수수값은 좋았으나 온 동네에 옥수수 수확량이 줄어들어 판매가 어려웠다.

쌀이라도 잘 팔아야 생산비라도 건질 텐데라는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계속된 비에 논둑이 터지는데 초보농사꾼이 아무리 막아봤자 또 터지고, 더 터졌다. 수확량은 전년의 반의 반토막이 나서 10kg 40포대를 수확했다. 그리고 쌀값은 폭락했다. 오랫동안 직거래하던 단골들마저도 외면했다. “어머, 왜 그렇게 비싸요? 쌀값 안 내려요?”라는 소비자의 질문은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생산비가 전부 다 올랐는데 쌀값을 어떻게 내리라는 건가?

결국 쌀 10kg짜리를 2포 팔았다. 그리고 나머지 38포를 기부하거나, 나누어 먹었다. 값을 내려 팔고 싶지 않았다. 그냥 줄지언정 헐값에는 팔지 않겠다는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나는 농사로 제대로 망했다. 처음부터 물려받은 것 없이 시작한 농사에 버틸 힘도 없고, 어차피 가진 땅도 없는데 구차하다 싶어 탈농을 결심했다. 앞으로 취직을 해서 먹고 살고, 농사는 취미로 텃밭이나 짓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세상 못 믿을 말이 어르신들이 내년엔 농사 안 짓는다는 말이라고 놀려댔었는데, 초록 풀떼기가 슬그머니 올라오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달력을 보며 한 해 농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분명 탈농 선언을 거창하게 했는데 나는 왜 씨앗을 꺼내 고르고, 이 밭 저 밭 뭘 심을지 고민하고 있는 걸까? 알 수가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겨우 한 해 울어봤구나. 그동안 농민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탈농을 번복했을까… 숙연해지는 밤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농부로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올해도 분명 마이너스일 거다. 결말이 뻔한 얘기다. 이제 한 번 망했으니, 다음엔 좀 더 잘 해봐야지. 농산물이 제값 받고, 농민이 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날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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