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 스스로 만들 수 있는 보루, 농협을 잘 세우자

  • 입력 2023.02.26 18:00
  • 기자명 김순재 전 동읍농협 조합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3월 8일이 농협조합장 선거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시간이 흐르는 것을 깜박했다. 농협 조합장을 했던 사람으로서 너무한 거 아니냐는 주변의 핀잔을 받으며 선거를 앞두고 입장표명(?)을 요구받고 있지만 아직은 묵묵히 있다.

필자는 2010년 2월, 조합장에 당선됐고, 5년 5일의 임기를 마친 뒤 처음으로 시행한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2015년 3월)에 출마하지 않았다. 스스로 평가에 지나치게 너그러운 것인지는 몰라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당시 농협의 처지에서 해야 할 일에 대해 거의 목표치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소 난해한 궤변일 수도 있는데 농업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농업 현황에서 추후 10년간은 농협의 위치가 비슷할 수밖에 없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볍게 보고 시작한 조합장의 업무는 혹독했다. 당시 5년의 임기 중에 ‘도둑놈’ 소리를 300번은 들었던 것 같다. 임기 5년을 지내며 세운 초창기 첫 목표는 도둑놈 소리 안 듣는 것이었다. 3년 정도 지나니 일단 막말을 하는 조합원이나 이용고객들은 확실하게 줄어들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거의 대부분의 농촌형 농협들도 예금과 대출에서의 차액 이익률이 2.5~3.0% 사이에 있겠지만 필자가 조합장을 하던 시기인 2010년에는 예대 마진이 무려 4.9%였다. 그러니 도둑놈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하는 직원들이 5년 동안 상당히 노력을 했음에도 필자가 목표했던 3.0% 밑으로 떨어뜨리지 못하고 3.02%에서 필자는 조합장을 그만뒀다. 2022년은 특이하게 예대 마진이 올랐지만 지난 시간 동안 흐름이 이어져 조합장을 그만둔 이후에도 필자가 근무했던 농협의 예대 마진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그리고 또 조합장 선거 시기가 됐다. 가만히 있어도 이런 저런 말들이 들려온다. 황당한 이야기가 들려도 사실관계를 확인조차 안 하고 버려뒀더니, 이제 주변이 필자에게 확인을 요구한다. 이제 시기가 된 듯해 이번 선거에 대한 입장을 좀 정리하고자 한다.

일단 이번 선거를 통해 농협이 달라질 양상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 선거와 흐름이 거의 비슷하다. 떠도는 이야기들이 사실상 전부로 보이고 일부만 진실하고 상당수는 선거에 쓸만한 내용에 불과한 것들이 많다. 주변에서는 현금 등 과다하게 비용을 쓰고 있다는 소문이 늘 돌고 있다. 지난번 선거 때도 그랬었는데 이번에도 그 흐름은 비슷하다. 개선되거나 달라진 바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실질적인 정책들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농업에 대한 철학은 없고 그냥 패거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만 확실하다. 그래서 달라질 것도 거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솔직히 매우 안타깝다.

농민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법률로 보장된 조직은 여러 개가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있고, 농촌진흥청도 있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도 있고, 한국농어촌공사도 있고, 늘 가까이에는 농업기술센터도 있지만 언급한 모든 조직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비용을 조달해 운영되고 있다. 거기에는 본래 농민이 없고 농업과 관련된 직업인들이 있을 뿐이다. 그 조직의 인사권도 농민들과는 별 관련이 없다. 각 조직의 수장들도 당연히 농민이 아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농협만 농민에게 그 운영권이 있다. 사실 농협만 바르게 하고 농협을 중심으로 농민들이 잘 뭉치기만 해도 농민들은 우리 사회에서 기반을 충분히 강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농민들은 그 중요성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농민들을 위해 농민 스스로가 강력한 보루를 만들 수 있음에도 천박한 방식의 선거가 진행된다면 농민들은 계속 힘들 것이다.

사실 조합장은 아주 쉬운 자리일 수가 있다. 지난 선거에 당선된 인근의 어떤 농협 조합장은 필자에게 좋은 상임이사를 선출하고 싶다며 비공식으로 의논을 한 적이 있다. 결과적으로 좋은 상임이사가 선출됐고, 이번에는 선거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합장 출마를 저울질하던 분들이 전부 포기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는 싱긋 웃고 말았다. 그 농협의 조합장과 상임이사는 끊임없이 자기 농협의 공개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을 공개했고 조합원들과 자주 의논했고 협조를 요청했다. 그러니 당연히 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될 상황이 된 것이다.

농협은 농민에게 매우 중요한 조직이다. 돈 몇 푼에 흔들리고, 패거리에 휘둘리고, 헛소리에 휘둘린다면 농민들은 계속 힘들어질 것이다. 오십 넘은 사람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대개 사람들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간다. 후보자들이 걸어온 길이 후보자가 갈 길이다. 그러니 선거 시기에 던지는 말에 휘둘리지 말자. 투표의 행위는 아무도 못 본다. 자기 양심대로 투표하자. 그게 농민에게, 농업에 도움이 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