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없는 학교, 지리산

  • 입력 2023.02.26 18:00
  • 기자명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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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어느 날 하동호 둘레길에서 길동무들과….
4월 어느 날 하동호 둘레길에서 길동무들과….
벚꽃과 호밀밭 사이로 난 둘레길.
벚꽃과 호밀밭 사이로 난 둘레길.
꽃강으로 불리는 서시천 둔치 둘레길.
꽃강으로 불리는 서시천 둔치 둘레길.
나락이 익어가는 함양 마천 자락길에서….
나락이 익어가는 함양 마천 자락길에서….

하동 지리산문화예술학교, 남원 산내 진달래산천, 함양 온배움터, 구례 봉서리책방, 산청 공간산아… 지리산 자락에 깃들어 움 틔우고 있는 울타리 없는 학교이자 움직이는 교실들이다. 물론 지리산 5개 시·군에서 한 곳씩만 나열한 것이라 지리산 아흔아홉 골에 숨어 있는 숱한 배움터는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중에 필자가 교사로 참여하고 있는 지리산문화예술학교는 2009년 지리산학교로 출발해서 지금은 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로 그 이름이 바뀌어 14년째 이어지고 있는데 필자는 올해로 4년째 초록걸음반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리산을 걸으며 지리산의 속살을 만나는 초록걸음반 말고도 산야초반, 디카시반, 와인아카데미반 등 10여개 반이 신학기 수강생 모집을 마치고 3월 개강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수업이 가능한 것은 지리산 전체를 교실로 하는 움직이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우리 초록걸음반은 매달 첫 토요일에 총연장 295km, 21개 구간으로 이루어진 지리산 둘레길 위주로 걷긴 하지만 여름철엔 둘레길을 벗어나 시원한 계곡을 따라 걷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길동무(수강생들을 이렇게 부름) 중에는 해마다 어린이들 한두 명이 참여하고 있다. 쉬엄쉬엄 걷기 때문에 가능하고 또 이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청량한 비타민으로 길동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는데 올해는 또 어떤 아이들과 함께 걸을지 기대가 자못 크다.

길동무들과 지리산을 걷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모습들을 만나게 된다. 우선 지리산에 깃들어 살아가시는 동네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고 그 동네를 굽어살피는 정자나무들 또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게다가 세계 최장 야생화길로 기네스북에 오른 지리산 둘레길은 어느 구간을 걷든 흔하게 만날 수 있는 들꽃들 이름을 알아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리고 걸음을 걸으며 필자가 길동무들에게 들려드리는 시와 음악은 초록걸음반 수업의 비밀병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구간에 어울릴 만한 시와 음악을 고르는 일은 참으로 고역임을 실토한다.

지리산 둘레길이 만들어진 지도 10년이 훌쩍 지났는데, 지리산 둘레길은 천왕봉 등정이나 화대종주, 태극종주 등으로 대표되던 지리산의 산행 문화에 큰 전환점이 된 건 분명하다. 수직으로 급하게 오르던 산행에서 사부작사부작 느릿느릿 걷는 수평의 길이 생김으로써 지리산에 새 지평을 열었다고 감히 주장한다. 결국 또 하나의 학교가 지리산에 들어선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지리산은 지치고 아픈 이들이 언제 찾아와도 위로와 치유를 선물하는 자연학교이자 울타리 없는 교실임이 분명하다. 요즘 들어 더욱 희망적인 건 지리산 구석구석에 젊은이들이 스며들어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들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새 꼰대 대열에 들어선 필자는 앞으로 이 지리산의 젊은이들을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리라. 그렇지만 산악열차나 케이블카 등 지리산을 돈벌이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개발 망령에 대해서는 앞줄에 서서 단호히 싸워나갈 것을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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