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관심 없는 국내산 소 ‘육우’의 위기

  • 입력 2023.02.23 19:48
  • 수정 2023.03.01 10:37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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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육우 송아지들을 입식해 사료배기로 길러내는 심대복·조준옥씨 부부가 정오 무렵 송아지들에게 따뜻한 물을 급수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낙농업이 존재하는 이상, 젖소 수송아지는 암송아지가 태어나는 만큼 매년 일정한 수가 생산된다. 낙농업의 테두리 안에선 쓸모가 없는 이들을 거둬 한우처럼 고기용 소로 키워 내고 농가소득을 창출하는 게 육우산업의 역할이다.

사육·도축·유통 등 전 과정에 적용되는 기준과 체계가 한우의 그것과 같은 만큼 소비자에겐 더욱 저렴한 가격에 국내산을 섭취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수송아지를 전부 거둘 수 없는 낙농가의 경영 유지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낙농업의 부산물을 다룬다’는 세간의 인식만큼이나 정책적 배려가 취약하다.

여러 사례 가운데 단 하나만 고르자면, 통계기반부터가 엉성하다. 육우 농가라고 해서 조사의 손길이 닿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한우’와 ‘젖소’의 통계를 우선해 작성하기에 육우 통계는 선명도가 낮다. 통계청부터가 매 분기 내놓는 ‘가축동향조사’에서 육우 사육행위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한·육우’로 묶어 발표한다.

‘축산물이력제’에선 보다 상세한 정보가 추가되지만, 살펴보면 ‘육우 있는 농가 수’가 어디에 얼마 있는지 알 수 있는 수준에 그친다. 예컨대 한우의 경우 통계상에서 일관사육·번식·비육농가 각각의 규모까지도 파악할 수 있지만, 육우의 ‘초유떼기’ 사육농장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농가 수나 사육규모를 어림잡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또 송아지는 정확한 시세를 알 수 없어 불투명성으로 인한 많은 불만을 야기하고 있다.

지난 1월 기준 전체 사육두수의 56%를 여전히 100두 미만의 중소규모 농가들이 키우고 있는 한우와 달리, 육우는 16만두에 이르는 전체 사육두수 가운데 70%가 넘는 11만5,000여두를 최소 사육두수 100두를 넘기는 농장들이 키우고 있다. 육우 사육에 따른 농가소득 등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50두 미만의 사육두수를 기록하는 농가들은 대부분 한우와 육우를 함께 기르거나, 착유우에서 태어난 수소를 그대로 기르는 낙농가로 추정한다.

엉성한 통계에도 불구하고 전문 사육 농가가 산업기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는 사실은 쉬이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설령 통계의 뒷받침이 없더라도 정책의 적용 대상 구분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높은 실효성 또한 기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한우보다 수익률이 낮고 소값 하락의 영향이 더욱 극심한 육우산업은 언제나 정책적 뒷받침에 목말라 있었지만, 무관심 속에 누적된 문제들이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는 현재에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송아지 거래단절 속, 무너지는 초유떼기 농가

충북 음성군 감곡면 단평리엔 ‘우리나라 최고의 육우 초유떼기 농장’이라 자평하는 호수농장이 있다. 농장주 심대복씨는 여기서 아내 조준옥씨, 아들 심명선씨와 함께 육우 송아지 170여마리를 기른다. 시설은 비록 낡았지만, 초유떼기 송아지가 사료를 먹는 ‘사료배기’가 될 때까지 개월령별로 송아지를 관리하는 체계가 확고히 잡혀있다. 송아지들만을 24시간 돌보는 ‘초유떼기’는 심씨 가족과 같이 전심으로 임하는 경우 매우 큰 노동력이 든다. 송아지를 거두고, 내보내는 이 징검다리는 낙농육우산업에서 한우의 번식농가 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어차피 여기 올 송아지니까 거기선 관리가 안 된다. 먹으면 안 되는 온갖 걸 먹고 오니 꼭 한번은 설사한다. 지푸라기, 하다못해 옆 송아지 보온조끼 솜까지 뜯어먹는 게 송아지들이니까.”

가령 낙농가에서 갓 데려온 송아지들은 지면에 닿지 않게 제작된 우리에 따로 넣고 먹이에 주의해가며 한 달 정도를 기른다. 바닥의 흙이나 왕겨 등 이물질을 핥아 먹어 설사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거기서 깔짚 우사로 옮겨갔다가, 최종적으론 비육농장의 그것과 유사한 형태의 우리로 들어가 적응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 요즘은 송아지가 나가질 않는다. 통상 3개월을 키우고 내보낼 송아지들이 4개월, 5개월까지도 머물고 있다. 그나마 심씨 가족은 140두 규모의 비육도 병행하고 있어 팔리지 않은 수송아지를 계속 키울 수 있지만, 여력 없는 많은 초유떼기 농장들은 문을 닫고 있다고 아들 심명선씨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송아지의 품질과 농가 상황은 뒷전인 채 돈만을 우선해 이리저리 쏠리는 생축 거래의 실태를 이야기했다.

“한우는 가축 경매시장이란 큰 틀이 있지만 육우 생축은 거의 관리가 안 된다. 소값이 좋으면 1톤 차만 구해서 그냥 아무나 상인하겠다고 나서 여기저기서 가격을 마구 올리다 보니 100만원도 나갔는데, 지금은 얘들을 약까지 먹여서 아무리 잘 키워도 겨우 40만원을 받는다. 어떻게 버티겠나.”

지금 심씨 농장은 초유떼기 송아지를 적게는 6만원에서 많게는 9만원까지 주고 사 온다. ‘만원에 내놔도 거래단절’이라는 이 송아지들을 상인이 얼마에 샀을지는 알 길이 없다. 이 송아지들이 비육농장으로 팔릴 때 역시 마찬가지다. 심씨 가족은 그래도 직접 소를 보고 제값을 치르려 하는 거래 농장들을 언급하며, 생산기반이 유지되려면 마진과 가격만 따지는 거래 행태를 개선하고 송아지값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심대복씨 농장에 새로 입식한 육우 송아지들이 각자 우리를 향해 몰려가고 있다.

 

도매가, Kg당 5,000원까지 떨어져

가장 근본적으로 세워야 할 부분은 역시나 가격이고, 여기서 늘 빠지지 않는 얘기가 바로 지난해 경쟁입찰제 도입으로 인한 육우 군납 물량 축소다. 지난 2021년 약 1,500톤이었던 육우 군납 물량은 경쟁입찰 방식을 도입하면서 약 42%나 줄었다.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육우 3등급 고기의 경매가격은 최근 kg당 6,000원 선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육가공 업자들이 제시하는 가격, 즉 실제 농가들이 접하는 ‘바닥 시세’는 5,000원대라는 게 현장의 전언이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서 800여두를 비육하는 황규일씨는 생산비 폭등과 가격하락으로 인한 어려움에 대해 답변하며 ‘이제는 농가가 자기 소만큼은 자기가 직접 판매하는 걸 허용해야 할 때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육우는 보통 ‘잘 돼도 두당 한우의 절반을 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어렵다. 농가들이 지금 3중고, 4중고까지 겪고 있는데, 군납이 없어진 이후로는 낼 데가 없다는 핑계로 유통업자들이 가져가는 가격도 더 내렸다. 경매시장에 내는 물량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도매로 가져가는 가격은 지금 kg당 5,600원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러잖아도 소값 파동 이후 축산물의 유통구조 문제가 늘상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인데, 조금 규제를 풀어 자기 축사에서 직접 기른 소들에 한해 직접 판매할 수 있게 허용한다면 농가들이 자구노력을 좀 더 더해볼 수 있을 거란 주장이다. 한우농가들 사이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소재이긴 하지만, 특히 군납도 불투명해진 상황 속에 사실상 육가공업체에 대량으로 저가 납품하는 것 이외의 수익창출 방법을 기대할 수 없는 육우농가 입장에선 더욱 떠오를 법한 생각이다.

“보통의 농장들은 대부분 농지를 대상으로 허가를 받기 때문에 식품 판매 허가를 받기가 어렵다. 도축장에 맡겨서 위생·안전 규정 지켜 도축하고, 그렇게 생산된 고기를 유통구조 거치지 않고 직접 판매하면 농가 입장에선 더 저렴한 소비자가에 판매할 수 있고, 사 먹는 사람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지 않나.”

생산자단체는 우선 대폭 축소된 군납 물량의 원상복구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낙농육우협회(회장 이승호)는 지난 17일 육우분과위원회 임원회의를 열고 육우 군납 물량 정상화 등의 대책마련을 논의했다. 유종현 육우분과위원장은 최근 육우가격 폭락은 군납 물량축소와 무관하지 않은 만큼 정부, 유관기관, 농협 모두 대책마련에 적극 나서달라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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