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청년에게 땅땅땅 집집집

  • 입력 2023.02.19 18:00
  • 기자명 박효정(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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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경남 거창)
박효정(경남 거창)

‘도시나 농촌이나 집 구하기가 쉽지 않구나!’ 오랜만에 통화를 한 친구는 귀농을 했다가 지금은 도시에 살고 있다. 지금 사는 곳이 재건축 예정지라 늦어도 내년 초에는 집을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필자도 시골집에서 시어른과 함께 살다가 아이들이 걸어갈 수 있는 면 단위 학교 근처로 분가한 터였으나 다시 논밭 근처로 갈 것인지, 계속 아이들 편의를 봐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사실 우리의 우선순위를 따지기 전에 형편에 맞는 마땅한 집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시골에 빈집이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 거래되는 집은 적었다.

그래도 휴경기인 겨울철에는 땅이나 집이 좀 나오는 편이다. 새로 부치게 된 밭 옆으로 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보았다. 아직 2014년 달력이 걸려있는 나무 흙집이었다. 대문을 들어서니 호두나무와 감나무 사이에 채마밭이 보이고 안채와 바깥채가 기역자로 배치된 풍경이 정겨웠다. 주방과 화장실은 기존에 집을 덧대어 확장해서인지 어둡고 추웠지만, 비어있는 개집에서 강아지들이 올망졸망 뛰어나오는 상상을 해보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마당이었다. 그렇지만 집을 사는 비용에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일까지 선뜻 엄두가 안 났다. 농자재값처럼 건축자재값이 급등한 것도 타격이 컸다.

집도 사람처럼 인연이 있다고 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청년들에게는 쉽지 않다. 인구 대책을 고민하는 농촌 공동체와 시골에서 살고 싶지만 살지 못하는 청년들 사이에 접점은 찾기 어려웠다. 귀농 십수 년 차도 여전히 농촌 정주 공간을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시에서는 직장과 집이 떨어져 있는 게 일과 삶을 분리하여 좋다고 했지만, 귀농하여 촌에 와서는 문전옥답만큼 이루고 싶은 꿈이 없었다. 집을 구하면 농지가 멀었고, 농지를 구하면 집을 구하지 못해 애먹었다. 늘 자전거나 차를 타고 가야 했다. 농장과 집이 한 그림 속에 있는 완전체로 사는 것이 농촌에서는 그리 흔한 일이 못 되었다. 그러다 보니 농지에 농막을 설치해, 사람 사는 집 모양새가 나지 않도록 주거의 질을 낮춰서라도 법망을 피해 사는 이들이 생길 수밖에. 어찌저찌 난방, 전기, 수도도 임시로 하여 화재나 범죄가 일어날 경우에도 ‘주거’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 된다.

돌아보면 20대 초반 도시에서 독립한 첫 공간이 직장 근처 고시원이었다. 2평 남짓, 창문도 없는 공간에서 잠만 자고 아침에 서둘러 빠져나오던 ‘방’이 있었다. 돈이 없는 청년들은 스스로를 실험한다. 가령 고시원의 단칸방이나 임시 주거 공간인 농막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언제쯤 더 나은 곳으로 이사할 수 있을지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실험을 한다. 실로 농촌살이에서 집과 땅을 구하는 일은 농장에 기초를 쌓는 시작에 불과하지만, 장벽이 높다. 귀농하고자 마음을 정해도 농지나 집이라는 토대가 흔들리면 뿌리가 쉽게 뽑힐 수밖에 없다. 실상 많은 청년이 농촌에서 만족할 만한 주거 공간을 찾지 못해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주변 청년여성농민은 농가 주택을 안전하게 느끼고 있지 않았다.

어쩌면 최신식 농막이 오히려 살기 좋다고 할 정도로 농촌 대부분의 주택은 꽤 오래되었다. 도시와 달리 재개발이 어려우니 집도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 수시로 관리하며 산다. 촌집은 천장이 낮았고, 나무가 뒤틀리며 벽 틈이 벌어졌고, 숨을 쉬듯 얇은 벽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집도 생명이 있다고 살아 있는 듯 소리가 났다. 삐걱삐걱, 끼익. 아주 조금씩 기울거나 무너지고 있고, 쥐가 들끓거나, 지네와 개미 등의 벌레와 뱀도 마주했다. 지네를 못 보고 밟지 않기를, 개미가 부엌에만 있기를, 뱀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기를, 쥐가 시끄러운 겨울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랐다. ‘외풍’ 옵션에 난방비는 매년 걱정이었다. 문에 잠금장치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시골집과 아파트 집을 둘 다 지내본 아이들은 ‘마당 있는 시골집’을 선호했다. 옛날 집이 주는 아늑함과 자연스러운 멋은 아파트 생활과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집을 지으면 신경 쓸 일이 하도 많아 10년이 늙는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아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개와 닭처럼 마당에서 뛰놀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은 것이다. 도시의 대안공간으로서 생태적이고 살기 좋은 농촌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농촌을 살릴 청년이 뿌리를 뻗을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는 작은 기적을 바라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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