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사용 전기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 입력 2023.02.19 18:00
  • 기자명 정영이(전남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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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이(전남 구례)
정영이(전남 구례)

설 명절을 일주일여 앞둔 어느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억울해서 못살겠다! 농민회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면 좋겠다.” 요지는 한국전력공사에서 저온저장고를 조사하고 다니고 있는데 한두 집이 아니고 여러 집이 단속이 되었고 위약금도 천차만별인데 몇백만원이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었다. 농민회만으로는 어렵겠다 싶어 그날로 부랴부랴 구례의 모든 농민단체에 연락을 하고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문제가 심각했다. 사전에 저온저장고 사용에 대한 규정 안내나 계도 기간도 없이 압수수색이라도 하듯이 불시에 단속을 했고 사례 하나하나가 납득이 안됐다. 40여 농가가 넘게 단속이 되었다는데, 주인이 없는 집에 들어가 저온저장고 문을 열고 사진을 찍어 보내서 “유자차나 매실청, 장아찌, 고춧가루, 김치 등을 보관한 것은 불법이니 위약금을 부과하고 일반용전기로 전환한다”고 통보하기도 했고, 병원에 있는 농가에 연락해 200만원이 넘는 위약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한전 구례지사에 직접 찾아가 한꺼번에 내는 것은 어려우니 분납해서 내겠다고 요청했고 3개월 분납하기로 조정하고 돌아왔는데 자동이체 계좌에서 한꺼번에 인출해 가버리기도 했다.

위약금을 부과하는 기준도 고무줄 잣대였다. 농사용 저온저장고는 3평 또는 5평이 대부분인데, 어느 농가에는 600여만원이 될 건데 몇십만원으로 깎아주기도 했고 위약금 없이 일반용 전기로 전환한 농가도 있다. 강력하게 항의하거나 한전으로 쫓아가 따지면 조정해 주고, 따지지 않은 경우는 처음에 제시한 금액을 그대로 부과하기도 했다. 저온저장고 단속만으로도 말이 안되는데 농사용 전기로 쓰는 고추건조기나 농장 지하수까지 일반용 전기로 전환해버린 사례도 한두 건이 아니었다. 단속을 다닌다는 소문이 돌고 온 고을이 뒤숭숭했다. 이미 김치냉장고가 있음에도 새로 사는 집들이 늘고 저장고 열쇠를 맞추고 어느 마을에서 단속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아 그 면에 있는 모든 마을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각종 농자재값 인상과 인건비 상승, 61.8%나 상승한 면세등유 가격, 온갖 서민물가가 오르는 불황의 늪에서 생산비도 보장되지 않는 농산물 가격으로 힘겨운 농업과 농민의 현실이다. 이미 작년에 두 차례나 오른 농사용 전기요금 때문에 걱정이 태산인데, 3년 전 어마어마한 수해로 인해 마음의 상처와 경제적 피해를 입었던 구례 군민들을 위로하고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지원은 못할 망정 이런 사태를 자행했다는 것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공기업부채 1위, 누적적자 30조원을 메꾸기 위해 전체 전기사용량의 2%에 불과한 농사용 전기에 칼을 빼든 한전.

6차산업 시대의 농업은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가공·유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고 신선도가 중요한 먹거리를 저온저장고에 보관하는 것은 상식이고 당연한 일이다. 농업의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단속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한전 본사를 찾아가 면담 등을 진행한 결과, 농사용 전력에 대한 제도개선을 추진하고 제도개선이 이뤄지기 전까지 단속과 계도를 중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제도개선 과정에 농민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구례의 상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전국의 농민들이 불안해하며 저온저장고를 치우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한다. 여러 지역에서 문의가 쇄도했다. 구례의 대응이 전국의 농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무소불위 한전의 약속을 마냥 믿고 기다릴 수는 없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농민단체는 물론 지지하는 군민들과 연대하여 제도를 개선하고 피해 주민들의 요구를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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