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연탄① 연탄, 그 뜨거움이 우리를 키웠다

  • 입력 2023.02.12 18:0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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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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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연탄이 가장 많이 팔렸던 최대 성수기는 1986~87년도였다. 이 시기의 전국적인 연탄 수요는 2,400만톤이었다. 산업용은 제외하고 가정용만을 집계해서 그러하였다. 그런데 서기 2000년도의 가정용 연탄 소비량은 120만톤으로 줄었다. 기름보일러와 도시가스의 보급 확대로 13~14년 사이에 무려 95%가 감소한 것이다.

내가 연탄 때던 시절의 얘기를 취재해보겠다고 나섰던 때가 2001년 9월 어느 날이었는데, 그땐 이미 ‘연탄의 시대’가 저만치 과거 속으로 물러난 뒤였다.

-자, 모처럼 우리 집에 놀러 온 동창생 나리들께 커피와 과일 대령이오.

-어이구, 박 여사, 서비스가 만점이네.

-그런데 얼굴에 뭘 그렇게 묻히고 다녀? 옛날 연탄광에 들어갔다 나온 아줌마처럼.

-아, 가스레인지가 지저분해서 좀 닦았더니…. 그런데, 뭐? 연탄광이 어떻다고? 너 같은 부잣집 딸내미가 연탄불을 피워보기는 했냐?

-사람을 뭘로 보고 이래. 겨울철이면 내가 연탄 당번이었다고. 우리 집은 화장실 옆에 연탄광이 있었는데 양철통에 그거 넉 장 포개 들고서 낑낑거리던 생각을 하면 어이쿠….

-아,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신혼 시절 생각난다. 연탄광이 따로 없어서 슬레이트 지붕 처마 밑에 차양을 치고 벽에 붙여서 쌓아놨었는데…어느 날 비가 들이쳐서는 죽탄이 돼버린 거야.

-고백하는데, 난 신혼 시절에 연탄을 못 사서 주인집 연탄을 몰래 훔쳐다 때 본 적도 있다?

-하아, 내가 이래 봬도 참 똑똑한 여자였는데 고놈의 연탄가스를 하도 마셔대서 뇌세포가 반이 넘게 죽어버리는 바람에 요 모양 요 꼴이 돼버렸지 뭐냐.

-아이고, 또 저놈의 천재병이 도지나 보다.

남자들 술자리에서 퍼내도 퍼내도 마를 줄 모르는 안줏감이 군대 얘기라 했는데, 그 무렵 40대 이상의 여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쩌다 연탄 때던 시절 얘기가 화두로 등장하면, 무성한 경험담이 번개탄처럼 피어오른다. 이 여인들이 신혼 시절을 보냈던 1980년대엔, 연탄은 도시 서민들의 일상을 작동하는 유일한 에너지였다. 골목마다 발길에 차이는 것이 연탄재였다.

사연도 많았던 그 시절을 씩씩하게 헤쳐나온, 40대 여인들의 진짜 육성을 들어보기로 하자.

“날씨가 멀쩡한 날은, 두꺼비집만 잘 놓으면 연탄불을 방고래로 쏙쏙 잘 빨아들이니까 금세 따뜻해지지요. 그런데 습한 날은 연기가 아궁이 밖으로 새어 나와서 영 고역이에요. 단칸방이니까 부엌도 좁고 방문도 하나뿐인데, 열자니 춥고 닫자니 눈물 콧물에다 기침 콜록거리고….”

그랬으니 일기예보가 저기압이면 응당 그날은 단칸방에 세 사는 사람들도 저기압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이른 아침에 친정에 갈 일이 있어서 남편한테 연탄 좀 갈아놓고 출근하라고 부탁을 했는데, 저녁에 돌아와 보니 다 타버린 연탄재만 아궁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더라니까요. 연탄을 갈아본 적 없는 이 샌님 같은 남편네가 새 연탄은 밑에 놓고 불붙은 연탄을 위에 놓은 거지요.”

이런 남자들이 부지기수였다. 육칠십년대의 신문 만평을 보면, 앞치마를 두른 차림에 집게로 연탄을 들고 있는 여성을 가정주부의 전형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만큼 연탄불을 관리하는 일이 주부에게는 중요한 몫이었다. 반면에 어린 아기를 등에 업고 연탄불을 갈고 있는 남자의 그림은 ‘할 일 없고 한심한 남성’의 본보기로 통했으니, 남자가 연탄불을 잘 못 피웠다 해서 큰 흠결은 아닌 것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1980년대엔 서울 변두리 지역에 연탄을 찍어내는 공장들이 즐비했었다. 하지만 2001년 가을에 수도권에서 연탄공장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이 경기도 수원시의 수원역 뒤편에 있던 대성연탄 공장이었다. 대성연탄 본사와는 독립돼 있다는 이 공장의 김용덕 사장은, 60년대 초반에 연탄공장 직원으로 입사한 이래, 40여 년 동안을 연탄과 함께 살아오고 있는 인물이었다. 연탄의 생산과 공급에 얽힌 얘기는 그가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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