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장으로부터의 편지
어느 이장으로부터의 편지
  • 관리자 기자
  • 승인 2008.10.14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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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들에게 빼앗기는 직접지불금

‘2007년도 쌀소득 등 보전 직접지불제 등록 신청 접수 안내’
‘농지이용 및 직접 경작 현황 확인서 1부 첨부’
꼭 이맘때만 되면 받아 보는 이장의 업무 중 하나다.

직불제란, 매년 12월 소급 적용되는 고정 직불제, 매년 4월 적용되는 쌀값 보전 직불제, 5천㎡(평방미터) 당 30만원 이라는 거금이 농민에게 지급되는 고정 직불금, 3∼4월 사이에 지급되는 쌀값 변동직불제, 5천㎡당 50만원이 지급된다.

그래서 1년에 5천㎡ 농사를 짓는 농민이 모두 받는 돈은 약 80만원 정도. 무척 고마운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농민들은 정부 정책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실제로 경작한 경작자가 받아야 할 정부의 혜택을 우리 힘 없는 농민들은 불행하게도 힘 있는 부자(지주)들에 의해 또 한 번 착취 아닌 착취를 받고 있다.

“쌀 소득 등 보전 직접 지불제는 반드시 경작자가 받을 수 있도록 각 농가에 철저히 홍보하고 조사를 하여 신청,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철저히 조사해야 하는가? 조그만 마을에 눈을 감아도 아랫뜰은 누가 농사를 짓고 위에 뜰은 누가 농사를 짓는다는 것을 다 아는데…. 개천 옆 넓은 뜰은 서울에 사는 돈 많은 놈이 사서 길동이네가 소작을 하고 있지, 저 야산 밑에 갸름한 뜰은 인천에 사는 사기로 돈을 번 놈이 사서 구만이 아버지가 소작을 하고 있지, 이렇듯 손바닥 들여다보고 손금 재듯 조그만 마을에 무엇을 철저히 조사를 하는가?

그래도 나는 이장으로서 의무를 다 하고자 길동이네와 구만네 등 소작농들을 불러 직불제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며 그들에게 권리를 주장하라 했다. 그러나 구만네도 길동이네도 내 설명이 부족했는지 오히려 짜증스럽다는 얼굴로 돌아서고 말았다.

며칠 후, 서울 사는 모 아무개와 인천 사는 모 아무개가 음료수 한 박스를 들고 이장님 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해 죄송하고 미안하다며 찾아 왔다. 난 그들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찾아 왔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나에게 자기들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그래서 결론은 꼭 자기들이 직불금을 타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 설명했다.

난 그들의 주장에 맞서 이것은 꼭 구만아네와 길동이네가 직불제를 받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며 이장 직인 찍기를 거부 했다. 그들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다시 보자는 말을 남긴 채 돌아섰다.

그리고 채 한 시간도 안되 그들은 다시 구만이네와 길동이네를 앞세워 찾아 왔다. 그들의 설명인 즉 서울에서 틈틈이 내려와 주말이면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구만이네도 길동이네도 틈을 내어 농사일을 돌봐 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난 할수 없이 도장을 찍고 말았다. 그들은 승리자였고, 구만이네와 길동이네 그리고 나는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득의만만했지만 구만이네도, 길동이네도 나도, 아울러 말을 할수가 없었다. 오랜 침묵 끝에 구만네도 길동이네도 떠나 버렸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저버려야만 하는가? 도대체 나는 마을 이장으로서 우리 주민들의 권리를 찾아 주지 못하는 바보 이장이란 말인가?

이장의 책임인가? 정부 행정의 책임인가? 농민의 책임인가? 그렇다 이장도, 정부도, 아니다. 그 책임은 바로 우리 농민 에게 있다. 권리를, 의무를 다 하지 못하는 그 책임의 전부가 농민에게 있다.

어느 추운 겨울 밤 이었다. 난 길동이네와 마주 앉아 그 긴 겨울밤을 소주 4병에 두부찌개를 안주 삼아 살아 온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길동이 왈 “저 앞뜰, 서울 놈의 농사 내가 짓고 싶어서 짓나, 1500평 농사 지어봐야 쌀 25가마 정도가 나오지 25가마 중 도지세로 8가마 주고, 농기계 값 비료 값, 농약 값 제 나면 뭐가 남을 줄 아나 그래서 직불제는 내가 신청해야 하겠다고 했더니 서울 그놈이 뭐라고 하는 줄 알아? 그러면 날더러 논 내 놓으래 갑돌이 준다고 농사지을 놈 많다고…. 하기 싫으면 관두래. 기가 막힌 일이지…. 그래서 한동안 고민을 했어, 남는 것이 없어도 비싼 트렉타, 이앙기, 콤바인 그냥 녹슬게 할 수 없잖아. 그래도 기계 놀리지 않고 그놈 농사 지어 주면 농기계 값에 보탬이라도 되겠지… 하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서울 놈에게 사정하여 다시 짓고 있네. 이장, 내말 이해해야 해. 우리 농민들이 바보라서 이런 거 아냐.”

그렇다, 우리 농민들이 바보라서가 아니다. 비싼 농기계 놀릴 수 없어서 별로 남지 않는 소작이라도 해야 하는 농민의 순진한 마음 이런 순진한 마음 들이 우리 농민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다.

〈경기도 김포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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