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촌에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 입력 2023.02.05 18:00
  • 기자명 현윤정(강원 홍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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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윤정(강원 홍천)
현윤정(강원 홍천)

나에게는 중학교 3학년이 되는 큰 조카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작은 조카가 있다. 도시에서 어린이집 교사로 살던 시절, 결혼한 오빠 집에서 3년 정도 함께 살면서 아침밥 먹여 어린이집 출근길에 등원하고, 퇴근길에 같이 하원해서 씻기고 함께 잠들던 애틋한 조카들이다. 내가 귀농한 뒤론 매년 여름방학, 겨울방학 그리고 조금 긴 연휴마다 내가 사는 시골에 온다.

이번 명절 연휴는 조카들과 함께 화천 신랑 집에서 보냈다. 화천의 겨울은 홍천보다 더 하얗고, 더 춥다. 신랑 집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데, 집에서 하우스로 가는 경사길에 쌓인 눈에 또 눈이 쌓여 천연 눈썰매장이 되어있었다. 친오빠랑 신랑이 썰매를 놓고 출발할 수 있는 점프대까지 만들어 주었고,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나가서 썰매를 몇 번씩 타고는 집에 들어와서 군고구마를 먹고 놀았다. 때마침 산청에서 친구네 가족까지 휴가를 오게 되어 초등학생 한 명과 중학생 한 명이 더 합세하여 조카들과 어울려 놀았다. 아이들은 정말 빨리 친해져서 강아지들과 같이 눈밭을 뒹굴며 놀았다. 실컷 썰매타고 뛰어놀다가는 집에 들어와선 벽난로에서 불멍하고,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추운 겨울날의 하늘은 남푸른색으로 아주 맑고 별빛이 보석처럼 빛난다. 밤 산책길에 아이들은 연신 춥다 춥다 하면서도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아무 별자리 이름이나 불러대면서 한껏 신나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모가 농촌에서 살기로 결심한 건 밤하늘의 저 별을 보며 살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들은 믿지 않는듯했다. 진짜냐고 몇 번을 되묻기에 정말이라고, 고모는 정말 하늘을 보며 살고 싶어서 귀농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또 다른 친구네 가족들이 휴가 중에 들렀다. 홍천 집에는 닭 열세 마리가 있는데 겨울이 되면서 하루에 달걀을 네 알 정도 낳는다. 친구네 아들이 동물을 좋아한다길래 닭장에 데리고 가서 모이도 주고, 둥우리에서 달걀도 꺼내 와보라고 했다. 청계와 오골계, 고려백닭 등이 섞여 있어서 달걀의 크기도, 색깔도 각양각색인 계란을 보며 아이도 부모들도 신기하고 신나했다. 우리는 모일 때마다 숯불에 바비큐를 해 먹었고, 내가 농사지은 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 놀러온 아이들과 부모에게 농촌에서의 삶과 농산물들을 소개하고 앞으로의 삶을 이야기 나눴다.

조카들과 함께한 일주일이 지나고 아이들은 도시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나는 부모님과 지난 명절을 지낸 소감을 나눴다. 큰조카가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될 테니 앞으로 얼마나 더 시골집에 오겠냐는 이야기부터 아이들과 함께한 소소한 기억들을 곱씹었다. 아이들이 농촌에 와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집 앞에서 눈썰매를 타고, 강아지들과 산을 타고, 장작불에 고구마를 구워 먹고, 자기 키만한 고드름을 따다가 칼싸움을 해보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어울려서 생활해 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시골에서의 경험을 기억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비슷한 시기에 귀농한 언니에게 말했더니, 그건 내가 농촌에 살고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답해줬다. 농업과 농촌이 지속가능하도록 노력하는 일 중에 아주 중요한 일을 내가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농촌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조카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의 다채로운 경험과 기분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농촌을 대하는 마음이 다를 것이라고 했다. 그래, 어쩌면 그들은 이 경험으로 농촌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고, 농업의 소중함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농민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마트를 가더라도 우리 농산물을 한 번 더 찾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사는 농촌 마을을 지키며, 우릴 찾는 사람들에게 농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억을 선물하고, 지역 농산물을 먹도록 하는 나의 삶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일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농촌을 더욱 이롭게 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길, 그리고 더 많은 나의 친구들이 생겨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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