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바람에 흔들리는 친환경 인증제도

  • 입력 2023.02.05 18:00
  • 기자명 최요왕(경기 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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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요왕(경기 양평)
최요왕(경기 양평)

근래에 비산으로 인한 농약 검출로 친환경 인증이 취소되는 농가들이 바람 심한 제주지역을 필두로 전국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농민들의 고령화로 드론방제가 일반화되면서 그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근본적으로 ‘친환경농산물에서는 농약이 검출되어서는 안된다’는 시행규칙 한 구절이 자리잡고 있으며, 기존 300여 종에서 400여 종으로 늘어난 검사대상 농약 종류, 그리고 날로 발전하는 분석기술이 눈에 불을 켜고 농약을 찾아 헤매고 있다. 이미 전 지구적으로 온갖 화학물질의 오염에서 자유롭기 어려워진 게 작금의 현실이다. 애초에 친환경농업은 그 오염을 줄이고 생태적이며 건강한 땅과 물과 공기를 늘려 나가고 그를 바탕으로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행 친환경 인증제도는 그 발목을 붙잡는 형국이 돼버렸다.

바람은 지번을 읽지 못한다. 올 한 해 비산이 의심되는 인증취소 건수가 제일 많은 지역이 제주도로, 바람이 제일 많이 부는 지역과 일치한다. 현행 인증제도는 바람 많은 지역에서는 친환경농업을 해서는 안되고 그래서 제주도는 기존의 오염을 극복하는 것을 포기해야 된다는 결론을 조장하고 있다. 바람이 제주도에만 부는가.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전국적으로 바람에서 자유로운 지역이 어디 있겠는가.

농민들도 인권이 있다. 시행령의 한 줄 문구로 친환경농민들은 잠재적 범죄자가 돼버렸다. 기관과 유통주체들의 십자포화 같은 농약잔류검사 중에 티끌의 티끌만한 농약이 검출돼도 인증이 취소돼버린다. 결국 땅을 건강하게 살리려는 농민들의 농사 과정에서의 숱한 노력들은 바람에 흩어지는 한 줌 먼지가 돼버리는 것이다.

왜 검출되었는지 소명의 기회도 없고, 타의에 의한 것이었을 때 구제되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제도의 폭력이다. 그 폭력에 친환경농민들의 인권은 항상 노출되어 있다. 몇십 년 친환경농업으로 애써 이뤄왔던 농민들의 멘탈은 0.1초만에 붕괴되어 버린다. 열 사람의 도둑을 잡기보다 한 사람의 결백을 찾으려는 법정신과 제도는 친환경 인증제도에 없다.

순망치한, 결국 최종 피해자는 소비자다. 비산 농약에 의한 위험요소를 비롯해 이러저러한 문제로 친환경 인증 농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현장에서 늘고 있다. 객관적으로 농약 살포의 확률은 더 높아지고 있으며 소비자들에게 제공될 건강한 농산물도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농사 과정에서 당연하게 농약을 살포한 농산물과, 그렇지는 않으나 불어오는 바람과 흘러드는 물에서만 자유롭지 못한 친환경농산물 중 어느 것이 더 건강한 농산물이겠는가. 기왕에 오염된 흙과 물과 공기는 더 오염되게 방치할 것인가.

친환경농업 본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러 주체 중 정부가 맡는 역할이 제도인 것인데 그 제도가 되레 목적을 이루는 데 방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 제도는 칼자루이며 농민들이 쥐고 있는 것은 칼날이다. 칼자루를 쥔 기관은 칼날을 쥐고 있는 농민을 위해 칼자루를 마구 휘둘러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 전문성 있는 인증기구를 새로 설립하여 친환경농업을 늘리고 실천하는 데 법과 제도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실행하도록 해야 한다.

친환경농업은 절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현세대의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서, 미래세대에게 지속가능한 토지생산력을 물려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잔류농약이 나왔네 안나왔네 하는 미시적인 논쟁보다는 지속가능한 토지생산력 유지를 위해 농민들과 일반 국민들과 국가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와 토론이 훨씬 건강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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