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62] 시대가 변했으니

  • 입력 2023.01.22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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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얼마 전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의 유튜브 방송 중 식량문제를 다룬 동영상이 있어서 들어 본 적이 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생물학자는 인류의 식량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고, 그 해결방안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궁금했다.

그의 결론은 소비자가 많이 사는 서울과 같은 도시에 식물공장을 짓고, 농민들로 하여금 농산물을 생산하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기후·환경이 급변하니 안정적인 식량생산을 위해서 식물공장이 답이라는 취지였다.

한마디로 실망이었다. 도시에 식물공장을 짓고 농민 누구를 농사짓게 한다는 것이며, 이들이 도시에서 살 집은 또 어떻게 할 것인지 모르겠다. 그밖에도 농촌에 있는 집은 어떻게 할 것이며, 농지는 어떻게 하며, 더 나아가 기존 농촌의 각종 생활 인프라와 지역경제는 어떻게 하며, 식물공장에선 키울 수 없는 쌀과 같은 곡물과 과일류는 또 어떻게 할 것인지,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현실을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일까.

유명하다는 대중적 명성만으로 자기의 전공 분야도 아닌 분야, 즉 식량문제와 농업·농촌·농민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막 던져서는 더더군다나 안 된다.

그래서 학자는 자기 전공 분야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겸손하거나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 물론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고집도 있어야 하고 자기 이론도 있어야 한다. 그걸 뭐라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학자의 소신일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존중해 줘야 한다.

학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치인과 관료들도 농업·농촌·농민 문제를 그렇게 쉽게 또 가볍게 말해서는 안 된다. 예컨데 쌀값이 오르면 라면을 먹으면 된다거나, 농지를 풀어 주택가격을 안정화 시키자거나, 농업도 개방화 시대에 수출산업으로 변해야 한다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농업·농촌·농민 문제는 구조적으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전문가들의 마구잡이 주장의 배경에는 아마도 ‘이젠 시대가 변했으니’ 농업·농촌·농민도 변해야 한다는 데 기반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첨단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고, 기후·환경여건 변화는 물론 경영과 경제적 상황도 변했기 때문이란다.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인류의 식량문제 즉, 농업·농촌·농민 문제는 시대가 변하는 속도처럼 그렇게 고속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농촌 현장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대부분의 농민에게는 시대의 변화 속도에 맞춰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첨단 기술의 도입은 물론 기술습득 과정이 길 뿐만 아니라 자본의 제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경영·경제적인 위험도 당연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념적으로나 아이디어 차원에서 쉽게 얘기할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을 비전문가는 명심해야 한다. 남의 일이라고 가볍게 말해서는 안 된다. 시대의 변화 속도와 농업·농촌·농민의 변화 속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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