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장, 정체성이 점점 흐려진다?

‘조합·조합원 권익증진 사업’

중앙회장 업무에서 완전 제외

  • 입력 2023.01.15 18:00
  • 수정 2023.01.15 21:11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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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중앙회(회장 이성희)가 지난해 12월 29일 정관 개정을 통해 중앙회장의 업무인 ‘회원조합·조합원 권익증진을 위한 사업’을 전무이사 업무로 전환시켰다.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위원장 민경신, 전협노)은 이에 성명을 발표, 농협중앙회장 정체성 상실 문제를 매섭게 질타했다.

농협중앙회장의 업무 범위는 생각보다 넓지 않다. 농협중앙회 사업 중 경제·신용사업이 오롯이 각 사업전담대표이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회장은 중앙회를 대표하는 대외활동과 함께 교육·지원사업의 일부, 즉 ‘회원조합·조합원 권익증진을 위한 사업’과 ‘의료지원사업’ 두 가지를 관장할 뿐이다. 그나마 이 두 가지 업무도 규정에 따라 전무이사에게 위임·전결시켜왔다.

이번 개정 정관에선 전무이사에게 위임·전결시켜온 이 두 가지 업무를 아예 회장의 업무에서 지워버리고 전무이사의 ‘고유업무’로 이관했다. 이는 농협중앙회의 자체 결정이 아니라, 지난해 4월 농협중앙회 정관의 본체 격인「농업협동조합법」이 개정된 데 따른 것이다. 법 개정을 이끈 이만희 의원은 ‘농협중앙회장을 대외활동 업무에 집중케 하기 위함’이라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실질적으로 따지자면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위임·전결 시절에도 규정상 이 두 가지 사업에 대한 결정권과 책임은 전무이사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불거진 건 두 사업 중 ‘회원조합·조합원 권익증진 사업’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개정 이전엔 명목상으로나마 이 사업이 회장의 업무였고, 미미하나마 회장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가 됐다.

더욱이 이성희 현 농협중앙회장은 유독 농업·농촌·농민과 괴리된 언행으로 조합장·농민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에 더해 이번 정관 개정은, 농협중앙회장의 농업적 정체성이 계속해서 흐려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전협노는 지난 9일 농협중앙회장을 직접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정관 개정의 발단이 된 건 국회지만, 최근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이슈에서 드러났듯 개운찮은 법 개정의 이면엔 으레 농협중앙회의 로비활동이 있었으리라 의심하는 모양새다.

전협노는 “지역 농·축협 및 품목농협의 권익증진보다 우선하는 농협중앙회장의 고유업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으며 “주요 포털 검색창에 ‘농업중앙회장’을 검색해보면 직업란에 ‘금융인’이 새겨져 있다. 농협중앙회장이 농업인임을 스스로 부정하고 NH주식회사의 유일대주주 놀음에만 넋을 팔고 있는 현실 앞에 억장이 무너져 내릴 뿐”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농협중앙회장 고유업무 변경은 우리에게 농협개혁이 얼마나 엄중하고 절실한 시대적 과제인지를 다시금 상기케 하는 계기가 됐다”며 “수많은 이들과 힘을 모아 당장엔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도입 법안’을 폐기처분할 것이며 이후 변함없이 농협개혁을 향해 거침없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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