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제주 해녀들이 밭에서 물질을 한다

  • 입력 2023.01.15 18:00
  • 기자명 채호진(제주 서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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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진(제주 서귀포)
채호진(제주 서귀포)

제주 하면 생각나는 게 감귤, 파란 바다, 그리고 그 바다에서 작업을 하는 해녀가 대표적일 것이다. 해녀분들이 바다에서 작업하는 것을 제주에서는 물질이라고 한다.

요즘 귤 철에는 해녀분들이 감귤밭에서 일하는 게 흔하다. 필자도 이번 감귤 수확을 해녀분들에게 부탁해서 일을 했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이번 감귤 수확은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에 12월 폭설을 맞게 된 것이다. 인력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다가 2,000평 정도 되는 감귤밭을 포기해야 할 뻔했다. 2년 전에도 폭설이 와 귤이 전부 얼어 수확도 못 하고 모두 버린 경험이 있기에 마음은 더욱 바빠져 갔다. 하늘이 하는 일을 어찌 막겠냐만은 다행히 기온이 영하 1도 정도에서 머물렀고 눈도 이틀 정도 후에 녹아내렸다. 부랴부랴 다시 귤을 딸 인력을 수소문했고 동네 해녀분들을 불러서 일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일하러 오신 해녀분들의 나이는 거의 80세가 다 된 분부터 80대 중반까지였다. 동네의 친구 어머니도 함께했다.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똑바로 허리를 못 펴 오래 서서 귤을 못 따니 추운 땅바닥에 엉덩이를 그냥 철퍼덕 깔고 앉아 귤을 따셨다. 일을 시키는 내 자신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제주 해녀분들은 물때에는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바다에 나가지 않을 때는 밭에 가서 일을 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해녀분들은 ‘바당밭’에 간다는 말을 썼다. 바당은 바다의 제주방언이니까 바다의 밭에 작업을 하러 간다는 뜻이다. 밭이 육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들이 일하는 바다도 밭으로 인식을 하는 것이다.

제주의 농업은 그렇게 버텨왔다. 전업농과 대농이 제주의 농업을 만들어오고 제주 농촌을 유지해온 것이 아니라 바다와 밭을 오가며 가족농으로 그리고 소농으로 제주의 농업이 만들어져온 것이다. 지금에야 소농들이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리고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 농민의 수는 감소하고 농촌인구도 줄어들어 인력이 외국인노동자로 채워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극도로 힘을 쓰는 일이 아닌 어느 정도의 일들 중 부족한 부분은 나이든 해녀분들이 채워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분들의 연세가 80세가 넘어가고 일할 힘도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감귤을 수확할 철이 되면 감귤 농가에서는 해녀가 없으면 이 인력난을 어떻게 해결할 건지 걱정이 된다고 한다. 그분들이 한평생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농민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어왔던 것처럼 제주 해녀들의 숫자도 그만큼 줄고 있어 지금까지 제주를 만들어왔던 농어촌의 붕괴를 걱정하는 것이다.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들도 육지에서 농사짓는 농민과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제주 농지가 투기세력에게 넘어가 농사지을 땅이 없어지고 생산한 농산물도 제 가격을 받지 못해 절망하고 기후위기를 몸소 겪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녀들이 작업할 바다 속도 기후온난화와 환경 파괴로 황폐화되어 수확할 해산물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령화로 인한 문제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제주로 몰려와 우리 농민들이 일궈놓은 농지의 돌담 사이를 걸으며 힐링을 하고 해녀들이 납덩이를 허리에 차고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며 긴 휘파람소리를 내는 모습에 신기해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른다. 그 돌담 안에 농민의 삶이 있고 그 휘파람소리가 깊은 바다 속에서 나와 죽지 않기 위해 내 쉬는 숨소리인 것을. 그리고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제주 농어촌이 위태롭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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