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㉒] 냉이 한 줌 샀지만 삶을 한 소쿠리 배우고 온 진안 오일장

  • 입력 2023.01.15 18:00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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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뱀사골보다 추운 전라북도 산골짜기 진안고원의 1월 중순 오일장은 출발하기 전부터 이미 춥고 살 것이 별로 없는 장터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갔다. 도로는 물론이고 주차장에도 잔설이 남아 차를 세우고 걸으면서 넘어질까 조심해야 했고 바람은 매서워서 마스크가 없었으면 얼굴이 아팠을지도 모른다. 추운 날이어서 오늘 오일장 돌아보는 일이 말잔치로 끝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됐다.

그러나 오일장을 찾아 골목길로 들어서자마자 생각이 달라졌다. 기대가 작으면 실망도 작다고 하더니 이곳이야말로 그런 것 같았다. 작지만 알찬 시장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소박하지만 정감이 있는 시장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매력적인 장이었다. 일단 상인들이 친절한 것도 그렇고 작은 규모에 비해 사고 싶은 것들이 많은 시장이었다.

나는 일단 우리장학교에서 장아찌용으로 사용할 더덕과 마른 표고버섯을 사고 싶었다. 더덕도 마른 표고버섯도 모두 품질이 좋아서 처음 생각했던 양보다 더 사고 싶어서 그 마음을 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오일장에 가면 주머니를 가볍게 할 유혹거리가 너무나 많다. 예정에 없이 자연산 소굴을 만나서는 그 맛을 생각하고 웃다가 급기야 또 주머니를 연다. 동행한 친구에게 무쳐서 먹고 남은 건 굴깍두기를 담자고 말하고 나니 무가 필요하다. 그래서 저장했다 들고나온 가을무도 몇 개 산다.

진안 오일장은 상설전통시장인 진안고원시장 건물과 그 뒤를 흐르는 물가 주변으로 선다. 노지에 늘어선 오일장을 둘러보다 상설시장 안으로 가보고 싶어 쳐다보니 여느 지역과 비슷하게 청년몰이라 써붙인 간판이 있다. 입구의 리어카에서는 트롯을 크게 틀고 CD를 파는 분이 계신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절로 흥에 겨운 느낌이다. 가까이 가보니 CD가 아니라 요즘 시대에 걸맞게 USB로 팔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보다 더 재미나다. 진안군의 공무원들이 고맙다.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해 건물 안에서 농산물을 팔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모두 자신의 이름을 매대에 써 붙여놓고 파신다. 어르신들의 얼굴과 이름을 같이 보는 일도 흥미롭다.

92세의 강복순 할머니는 잡곡들과 냉이를 들고나오셨다. 잎이 짧고 뿌리가 튼실하니 아주 좋아 보여 남기지 말고 모두 싸달라고 했다. 돌아오는 토요일 저녁에 20명이 먹을 샤브샤브에 쓰기 충분한 양인데도 단돈 만원이라고 하신다. 16살에 시집와 지금까지 진안에서 살고 있다 하셨다. 92세의 나이지만 아직 고우신 할머니는 새색시 시절에는 손도 고왔을 것 같다. 일을 많이 하셔서 손가락 중간 마디가 굵기는 하지만 너무 거칠거나 변형이 되지 않아서 보는 나는 감사한 생각마저 들었다.

 

진안상설시장에는 농민들이 이름과 얼굴을 알리며 농산물을 팔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강복순 할머니가 들고 나온 잡곡과 냉이를 팔고 있다.

 

건물 안 몇몇 분의 매대에서 전라북도 산골에서만 먹는 나물인 멜라초도 만났다. 멜라초는 이 지역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내가 아는 이름은 산괴불주머니다. 군락을 지어 자라며 봄에 노란색의 꽃이 피는 산야초다. 데쳐서 나물로 먹는데 지구상에 존재하는 음식으로 쓴 것 중의 제일이 이 나물일 것이다. 고들빼기는 물론 씀바귀보다 쓰다. 물에 좀 우려야 쓴맛도 빠지고 독성도 빠진다. 원추리처럼 그렇다. 이 나물은 많이 먹고 나면 잠이 솔솔 온다. 자주 잠을 깨는 나도 이 나물을 먹은 날 밤에는 깨지 않고 몇 시간은 달게 잔다. 살 이유가 생기니 주머니를 또 연다.

좀 쉔 옻순을 데쳐 말린 나물도 샀다. 눈이 마주치면 거절을 못해 고추부각도 좀 샀다. 가다가 수삼도 좀 사야 하는데 하는 걱정은 뒷전이 되고 말린 피마자잎과 토란잎도 샀다. 홍삼의 고장인 진안이지만 아무래도 홍삼이나 수삼은 다음에 사야 할 것 같다. 들고나온 현금은 어느새 바닥이 났으니 말이다.

진안은 순대국으로 유명한 집이 오일장 주변에 두 곳이 있다. 맛있는데 양이 많아 좋다거나, 양은 적은데 국물이 맛있다며 좋아하는 사람들로 갈린다. 부부가 다른 사람들도 있다. 아침을 순대국으로 먹었으니 장 본 것으로 얼른 밥상을 차리고 싶어 서둘러 귀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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